순탄치만은 않을 스페인의 민주화|극우파의 위협해소 최대 과제|16%의 실업 등 경제난 기다려|기존 경제질서 존중하며 점진 개혁… NATO문제로 마찰 일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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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투표전의 여론조사가 예언했던 대로 28일의 스페인 총선은 하원의석 3백50석 중 과반수를 훨씬 웃도는 2백1석을 차지한 사회노동당(PSOE)의 압승으로 끝났다.
75년 「프랑코」사후 세번째인 이번 총선은 사회노동당의 압승, 종전 13석에서 1백5석으로 괄목할 신장을 보인 우파 인민동맹(AP)의 부각, 중도정당의 붕괴와 극좌공산당 참패 등의 결과를 낳으며 스페인 정국을 진보와 보수의 양극으로 「2분화」해 놓았다는데 특징이 있다.
늦어도 12월초에는 출점하게 될 사회노동당 정부의 앞길에는「소텔로」정부가 남겨놓은 경제위기·테러사태·극우파의 위협 등 「스페인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급한게 경제난국해결이다. 지난 1월 이후 페세타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20%나 떨어졌고 총선 후 평가절하가 있을 것이란 소문도 나오고 있다. 16%에 이르는 실업율 해소와 향후 4년간 80만명의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큰 문제다.
그러나 새 정부는 사회주의 정권이면서도「곤살레스」당수 자신이 국가관리경제를 신용하지 않고 있어 고압전기송전회사의 국유화 외에 새로운 국유화 조치는 없을 것 같다. 당초 예정했던 철강산업과 금융의 국유화 계획은 포기했다.
한마디로 사회노동당은 경제의 전면개편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40년「프랑코」독재에서 깊이 뿌리내린 행정이 무관심과 부패를 추방, 행정의 민주화·현대화·능률화를 이루기 위한 「부르좌혁명」을 제1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변혁은 기존질서의 전면개혁이 아니라『제2의 스페인 건설』을 위한 「차분한 변화」라고 보는게 옳다.
이 같은 「부르좌혁명」을 통해 아직 뿌리가 깊지 못한 채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는 「민주주의」를 확립한다는게 새 정부의 궁극의 목표로, 전형적 사회주의보다는 오히려 민족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대외정책면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사회노동당은 스페인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사회노동당은 우선 NATO군사기구에의 가입을 포기하고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일 계획이다.
의회 내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국내의 정책추진과정에서 형식적인 장애는 없을 것이나 사회노동당이 안고 있는 취약성과 군부의 동향은 앞으로도 극복해야할 시련으로 남을 것 같다.
1백3년의 장구한 역사로 유럽에선 가장 오래된 사회주의 정당이지만 실질적으로 「프랑코」사후 급성장한 새로운 조직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당 지도층엔 국가경영의 전문가보다는 아직도 아마추어 정객이나 이론가가 더 많아 스페인의 민주화·현대화란 과업을 성취하기에는 허약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보다 더 큰 의문은 군대가 신봉하는 이념과 정책들을 부정하고 있는 사회주의 정부를 군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경우 군부는 역사적으로 교회·기업가와 함께 사실상의 권부로 군림해왔다.
현재 장교와 하사관은 6만5천명으로 병사 5명당 1명꼴의 막강한 집단이다.
더우기 대부분의 주요 작전부대가 국경지대보다 수도인 마드리드 주위에 주둔하고 있어 군부가 국방보다「내전」에 더 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11개 군구사령관은 군대지휘권 뿐 아니라 군구내의 행정·사법권 등 대권을 장악하고 있어 군구안에선 총독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사회노동당은 군구사령관의 이 같은 대권을 박탈하려 하고 있다.
또 일반적으로 군부안에선 10%만이 민주화에 찬성하고 있고 10%는 군사정부를 원하고 있으며, 나머지 80%가 합헌정부에 대해「수동적인 적개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사회주의 정부와 군부의 미묘한 관계가 어떻게 공존의 실마리를 찾을지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사실「곤살레스」당수자신도 선거기간중 기업인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접촉을 가졌으나 군부와는 접촉이 없었다.
「곤살레스」당수가 투표를 앞두고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줄곧 대규모 가두시위나 극단적인 언동을 삼가도록 당부한 것도 우파에게 말썽의 구실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일게 분명하다.
그러나 반드시 군부의 위협이 크리라고만 보기엔 시기가 이른 것 같다.
이 같은 생각의 근거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투표전날인 27일 7개 주요정당의 지도자들이 선거결과에 승복하고 민주화 확립을 위해 모든 이념의 차이를 초월하기로 국왕에게 약속하고, 국왕과 헌법에 절대 충성할 것을 서약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79년 총 때의 68.3%보다 10%이상 증가한 투표율이 보여주는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정국 안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새정부를 이끌 「곤살레스」 당수는 「카롤로스」국왕과 같은 새세대이며 개인적 친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더우기 국왕일가는 최고 중재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이번 총선에서 헌법에 보장된 투표권마저 포기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총선이 민주정치를 다지기 위한 스페인 국민들의 장엄한 의식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전혀 잘못된 평가는 아닐 것 같다.<파리= 주원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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