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바바리 박중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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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교권-그게 한국이건 일본이건 대만이건 싱가포르이건-에서 런던에 온 관광객이 거의 빠짐없이 한번씩은 다 들르는 집이 하나 있다. 바바리 본포다. 하도많이 와 우비고 뭐고 아예 동양사람 체격에 맞도록 만들어놓고 판다. 그래 서양인손님 쪽이 오히려 뜸해질 정도다.
이렇게 동양사람들이 이집에 유난히 많이 찾아드는 것은 바바리집 물건이라고해 반드시 그 값만큼 남의 집 것보다 나아 서런련건 아니다. 바바리란 이름이고 그 이름난 집에서 샀다는데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선지 이집에선 겉으로만 봐서도 금방 그게 바바리집 것인줄 알게끔 특별한 무늬를 넣어서 판다.
물론 바바리뿐만 아니다. 가방은 구치, 시계는 롤렉스, 구두는 발리식으로 「뭐면 뭐다」 하는 명품들이 「족보」처럼 돼있고 그런것들을 잘 알고 밝히는데는 동양사람 이상가는게 없다.
그리고 염치도 좋지, 공자님 하고 바바리니 구치니 하고가 대관절 무슨 관계가 있다고 명교니 하는 거창한 얘기에 붙여 이런 수작이냐 하는 말이 나올 법도하다. 아닌게 아니라 온 세계가 죄다 시들어 가는듯한 가운데도 경제적으로 흥청거리는게 어쩌다 유독 유교권의 나라들이었다든지, 그래서 관광하며 비교적 돈 헤프게 쓰는 것도 그들이라는게 그저 우연한 건지도 모른다.
아닌게 아니라 공자의 말씀이 공업화를 가르치기 위한건 아니었었다. 그러면서도 공자님에게 바바리를 입혀드린 건 좀은 비슷한 얘기가 생각이 났고 그걸 끄집어 들어보려고 한 음흉한 생각이 있어서였다.
오랫동안 런던대학 LSC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다 연초 세상을 떠난 「로버트·매켄지」교수는 어느 저녁자리에서 이런 경험담을 하고 있었다.-민주주의라는 걸 놓고 제3세계 출신 학생들 사이에 뻔질나게 일던 논쟁 가운뎨 무엇보다 눈에 띈것은 유교권에서 온 학생들이 어느 특정국에 민주주의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외형에 주로 열을 올리는데 반해 비유교권출신들은 어느 특정국에 서구형 민주주의라는게 있어야 하느냐, 라는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입에 거품을 품고 있었다…. 우리들에겐 민주주의(그리고 자유·평등·박애·복지등등)란 바바리·구치·롤렉스등과 더불어 그「이름」이 이미 「족보」에 올라있고 그러면 그걸로 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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