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와 의원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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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총규모 10조5천1백70억원의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다룰 제114회 정기국회가 20일 개회되었다. 오는 12월18일까지 계속될 이번 회기를 통해 국회는 예산안외에 야당측이 내놓은 국회법개정안, 정치활동피규제자해금안 등 이른바 「정치의안」을 포함한 1백60여 안건을 처리하게된다.
정기국회는 예산안심의 및 이에 부수되는 각종세법의 개정안, 예산의 집행에 따른 각종 법령의 처리만으로도 으례 붐비지만, 예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안건들마저 한꺼번에 폭주하는 타성이 고쳐지지 않아 이번 정기국회 역시 예년과 다름없이 모든 안건에 대한 신중한 처리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국회의 역능은 간단히 말해서 제기된 모든 안건에 대한 충실한 토론과 심의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바를 국정에 반영시키는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국회의원이 제기된 안건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거나, 뻔히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일신의 영달 등 개인적인 이유로 해서 소신없이 행동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대표로서 권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민정당은 이번 정기국회를 조용한 「정책국회」로 이끌려는 전략을 세웠다한다. 정치적인 쟁점은 최대한 확산을 막고 예산안, 세법 등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의 심의를 더욱 충실히 한다는 방침이라는 것이다. 과거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일삼는다거나 정치적인 동기로 국회본연의 기능마저 마비시키는 국회의 파행적 운영을 바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능률만을 앞세워 다수당의 독선·독주를 원할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민정당이 생각하는 새국회상은 「민주적, 능률적, 생산적」인 것이다. 국회운영에서 능률의 비중은 크게 잡되 대화를 통해 반대의견을 최대한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할말이 있어도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의견을 개진하더라도 미리 그 문제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충분히 해서 능률적으로 설명하고 납득시키라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국회에서 다룰 안건가운데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중요성을 띠고있으면서도 자칫 주목을 끌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다.
가령 사회교육법안이나 유아교육진흥법안 등이 그것이다. 사회교육법안은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정규학교교육과정을 밟지 않은 사람이라도 진학의 기회를 주도록 되어 있는데 만약 이 내용대로 법이 제정되면 학교교육을 위주로 한 현재의 교육체계는 근본적으로 흔들린다는 얘기가 된다. 유아교육 진흥법안만해도 국회의 충분한 심의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느 안건이건 그것을 심의하는 자세는 진지해야겠지만, 새로운 법을 제정, 기존법체계를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있을 때는 특히 신중을 기하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야 하리라고 본다.
생각해 보면 제11대 국회가 출범한지도 어느덧 2년이 가까워진다. 80%이상이 정치초년생으로 짜여졌다 해서 그동안 운영의 미숙이나 발언의 치졸함이 있어도 대다수 국민은 관대하게 보아온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 중요성에 비추어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들은 이제보다 엄격하고 냉철하게 국회의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볼 것이다.
이같은 국민들의 따가운 눈을 의식한다면 국회의원들은 부단한 자기연마를 통해 스스로 자질을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원내 교섭단체를 가진 3당 총무는 국민의 면에 서서 국민의 소리가 국정에 반영되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한 다짐이 단순한 정치적인 수사에 그치지 말아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언행의 괴리가 깊으면 깊을수록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의 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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