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도둑 … 포털 ‘거리 뷰’로 사무실 골라 5억 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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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황모(33)씨는 절도죄로 복역하다 2011년 8월 출소했다. 나이 서른이던 그때 이미 전과 7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그는 다시 절도를 생각했다.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하기로 했다.

 네이버 ‘거리 뷰’, 다음 ‘로드 뷰’, 구글 ‘스트리트 뷰’처럼 포털들이 보여 주는 거리 모습을 이용해 범행 대상을 점찍고 계획을 짰다. 사전에 현장을 직접 돌아보다가 수상한 인물이 배회한다는 신고가 들어갈까봐서였다.

 변호사나 법무사 같은 전문 직종 사무실을 털기로 마음먹은 그는 법원 근처 거리 모습을 검색했다. 화면에는 사무실이 있는 건물 출입구와 방범창 설치 유무, 가스 배관 위치까지 그대로 나왔다. 거리 모습이 실시간 영상은 아니지만 인적이 드문 곳인지 정도는 쉽사리 확인할 수 있었다.

 황씨는 거리 모습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침투 계획을 짰다. 사무실이 빈 평일 늦은 밤이나 주말에 현금과 통장을 훔쳐 나왔다. 사무실 통장은 대부분 공동으로 쓰는 것이어서 통장 어딘가에 비밀번호를 적어놓는다는 점을 노렸다.

 사무실을 턴 뒤 도망치는 경로까지 거리 모습 보여주기 서비스를 이용해 미리 정해놓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행인이 없는 골목길을 거쳐 나와 택시를 타고 달아났다. 새벽에 통장에 든 현금을 인출한 뒤에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재차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16일 경찰에 붙잡히기까지 3년여 동안 서울·부산·대구 등 전국 54개 도시 228개 사무실에서 5억8000여만원 상당을 훔쳤다. 그는 경찰에서 “거리 모습이 상세하게 나와 위험하게 현장 답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며 “훔치고 달아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황씨는 범행을 저지르면서 계속 안경을 바꿨다.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통장 현금 인출자를 다른 사람으로 오인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꼬리가 밟혔다. 전국 안경점을 탐문한 경찰은 경북 경산시의 모텔에 숨어있던 그를 검거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24일 황씨를 구속했다.

 포털의 거리 모습 보여주기가 범죄에 이용되는 데 대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윤해성 연구위원은 “본인 확인을 한 이용자만 거리 뷰를 사용토록 함으로써 범죄가 일어나면 추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김승주(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사용자가 포털에 뜬 자신과 관련한 정보를 검색해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으면 포털 측에 수정·삭제를 요청하고 포털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울산=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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