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의 문학 터치] '우리는 달려간다' 박성원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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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흥미로운 독서 방법 하나 추천한다. 게임을 하는 것이다. 작가에게 머리싸움을 거는 것이다. 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왜 여기서 이렇게 썼지?'라고 의문을 품는다. 다음으로 나름의 결말을 상상한다. 마지막으로 정답을 맞혀본다. 승패는 결과를 맞히면 '승'이고 틀리면 '패'다.

박성원이라는 소설가가 있다. 최근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문학과 지성사)를 펴낸 그는 독자와의 게임에서 좀체 패배하지 않는 강력한 상대다. 박민규 식으로 말한다면, 프로야구 원년 박철순과 같은 승률을 자랑하는 프로다. 그의 상상력은, 막판 반전은 늘 독자를 한방 먹인다는 얘기다. 그의 소설을 읽는 행위는 게임 한판 제대로 붙는 일이다. 다른 작가와의 차이라면 싸움을 거는 쪽이 독자가 아니라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는 곳곳에 그물(인타라망)을 쳐놓고 독자를 유혹한다. 소설을 다 읽고 배신감과 패배감에 치를 떨면서 통쾌히 웃고 있을 득의양양한 작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승률이 뛰어난 만큼 주무기가 위력적이다. 그는 정보를 언제 얼마만큼씩 흘려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흘려주는 정보를 그대로 주워먹다 보면 꼼짝없이 걸려든다. 영화 '디 아더스'처럼 결정적인 정보는 맨마지막에 있다. 일테면 이런 식이다. 주인공이 눈을 뜬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막 의식을 차린 것이다. 낯선 집이다. 장갑을 낀 남자가 그를 예로 데려온 것이다. 피묻은 수건 여러 장이 보이고, 남자는 데운 우유를 준다. 지금까지의 정보를 취합하자. 목숨을 구해줬으니 이 남자는 은인이다. 뜨거운 우유까지 줬다. 피묻은 수건을 보니 주인공은 부상이 심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줄거리를 끝까지 말하면 반칙이지만 이번은 예외로 하자. 게임 상대(작가)가 박철순 급의 프로니까. 다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주인공. 옆방에서 죽은 남자와 묶인 여자와 기절한 젊은 여자를 발견한다. 주인공은 묶인 여자로부터 강도살해범으로 몰린다. 수건의 피는 주인공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었고, 데운 우유잔엔 주인공의 지문이 묻어있다. 가만! 그 남자, 장갑을 끼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 끝내 여자를 살해한다.

'긴급피난'의 줄거리다. 연작소설인 '인타라망'은 의식불명 상태였던 그 주인공이 69일 뒤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옆엔 또 다른 남자가 앉아 있다. 이번엔 속지 말자. 분명 여기에도 꿍꿍이가 숨어있다.

작가의 높은 승률은 탄탄한 기본기에서 비롯한다. 꽉 짜인 플롯과 빠른 이야기 전개가 독자를 막판 반전까지 직행으로 끌고 간다. 단편의 매력, 아니 단편의 특질을 이번에 마주했다. 게임 결과는 물론 참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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