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리포트] 강남집값 올리는 건 '가수요' 보유세·양도세로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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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정부는 3년째 부동산과 전쟁 중이다. 2003년부터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수없는 정책을 쏟아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사상 유례없는 초강도의 투기대책으로 알려졌던 2003년 10.29 대책도 오래가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그뿐만 아니다. 올 들어서도 판교 신도시 분양시장 과열 방지와 서울권 초고층 재건축 불허 등을 담은 2.17 대책에다 실거래가 과세.개발이익환수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5.4 대책 등 크고 작은 정책들로 시장을 공격했지만 족족 참패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급기야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강력한 정책 마련"이란 배수진을 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우리는 지금 부동산 문제를 붙들고 국력을 너무 낭비하고 있다. 고용 불안, 소비 위축, 설비 투자 부진, 생산능력 하락 등으로 경제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는데도 부동산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이대로 가다간 경제가 거덜나지 않을까 정말 걱정된다. 물론 부동산값을 잡지 않고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경우 오히려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는 정부의 진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빨리 부동산과의 전쟁을 끝내고 더 중요한 일에 진력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의 잇단 실책은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실상을 모르니 어떤 정책이 약효가 있을지 알 턱이 없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처방책을 내놓는 사이 시장의 내성만 키운 셈이다.

국세청이 최근 5년간 서울 강남아파트 취득 현황을 조사한 결과 매입자의 60%가 집이 3채 이상인 부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을 2채 이상으로 잡으면 80~90% 되지 않을까 싶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실수요가 아닌 가수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수요를 줄이는 강력한 정책만이 부동산과의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시장 원리를 따른다면 금리 인상이 좋은 방안이지만 경제가 여의치 않으니 결국 다주택자.땅부자 등에 대한 보유세.양도세 등을 강화하는 길밖에 없다. 이제 부동산도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왜 일찍 시장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김대중 정부가 저질러 놓았던 부동산 부양책의 부작용을 제대로 진단해 이에 맞는 처방을 빨리 내렸더라면 부동산 때문에 그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처음에는 사안을 제대로 파악해 보유세 강화에다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그럴듯한 대책을 마련한 듯 싶더니만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밀리다 보니 급기야 배수진을 쳐야 하는 지경에까지 온 게 아닌가. 이번에도 패하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는 수렁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를 살리면서 부동산 시장도 안정시킬 그야말로 '윈-윈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최영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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