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집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정주씨의 시집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는 문학사상지에 연재되었다가 이번에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부제로 알려져 있듯이 「시로 읽는 한국사양만년」을 그의 눈으로 다시 재어보고 다시 확인한 셈이다. 사적 사실에 충실하느라 매시편의 말미에는 이야기나 내용의 출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요량하고 나서의 시인의 새로움이 함께 가담하여 고리타분하지 않은 현대적 윤기와 총기를 획득하고있다. 서씨의 독창적 안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다.
동시대인으로서 이렇게 그윽한 아름다움을 일깨워 받은 것은 기쁜 일이다.
그의 이 시들은 개괄적으로 말해 그가 가진 재치나 기교가 거의 거침이 없는 무애의 경지에 갔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느님의 생각』 『환웅의 생각』 등 고조선시대편과 『팔월이나 한가위 날 달이 뜨걸망』 『처녀가 시집갈 때』 등 삼국시대, 『원효가 겪은 일 중의 한가지』 등 통일신라시대, 『현종의 가가대소』 등 고려시대, 『이성계의 하늘』 등 이조시대로 각시대의 시인의 마음에 집히는 일들을 이 시집은 엮고 있는데 어느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고 어떤 역경에도 웃을 수 있었던 의젓하고 여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담으려했다.
이러한 작업을 하면서 그의 시는 어떤 것은 엄청난 파괴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어떤 것은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하고, 하여간 언뜻 보기에는 혼돈의 세계를 맛보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론적으로는 이 시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독특한 세계라고 하겠다.
언어를 아끼는 절제의 미학이 종전의 우리 시에서 강조되는 것이었다면 무한대의 자유를 이 시집은 얻마있다. 언어에 매이지 않고 이를 풀어준다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산문화의 경향도 보이고 있는 이번 시들은 위험을 무릅쓴 전취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구장이처럼 놀고있는 아이에게서 동심여선을 깨닫는다면 서씨의 이연작은 문득 그러한 것을 연상시키는 느낌이다. 박재삼<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