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부자지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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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집 아빠와 아들은 유별난데가 있다. 출근 시간 때 아빠는 아들에게 거센 뽀뽀를 해준 다음 『이 녀석을 장난감 병정처럼 조그맣게 만들어 포키트에 넣고 다녔으면 좋겠어. 보고 싶을 때 꺼내 보게 말이야』하고 중얼거린다. 또. 퇴근 하기가 바쁘게 문간에서부터 아기의 이상유무부터 묻는다.
식사 때도 온통 신경을 이에게 쏟는다. 반찬 얹어주기, 물먹여주기, 떨어뜨린 숟가락 집어주기 등등.
엄마인 나는 마냥 편하기만 하다. 행여 아직 변을 완전히 못가리는 아들이 식사도중 행사를 벌일라치면 그이는 낯한번 찡그리는 일 없이 내손에 든 화장지를 뺏어 자기가 닦아 주고 치운다.『내가 할테니 식사하세요』해도 막무가내. 자기가 모두 해치운다.
그 때의 남편 표정을 유심히 보면 정말 조금의 귀찮은 표정도 없고 오히려 흐뭇한(?)표정이다. 대다수의 아빠들은 아기 변 치우기를 실어하고 어떤 아빠는 식사 때 아기가 행사를 벌이면 그만 숟가락을 놓기도 한다는 얘기 따위를 무수히 들은 나는 매번 그런 그이를 신통하게 쳐다보곤 한다.
저녁식사 후엔 아들이 좋아하는 자동차·그림책들을 펴놓고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놀아 주고, 몇가지 말도 가르쳐 주고, TV선전프로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선전하는 쪽 채널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아기분유 선전이 나오면 『여보, 저 아기 우리 린이보다 확실히 덜 이쁘지, 그지? 차암, 우리 린이 저 선전에 모델로 나가면 저건 그 다음날부터 히트야 히트!』이러면서 혼자 흥분한다. 솔직이 말해 우리 린이는 특별히 잘생긴 아이는 아니다.
사내애답게 이목구비가 크고 시원스럽게 생기질 않고, 말하자면 계집애처럼 오목조목하니 너무 얄상하게 생겨 사람들로부터 항상 계집애 같다는 소릴 들어온 터이고 한번도 『그놈 잘 생겼다』는 소릴 못 들어 본 터이니 짐작할만 하리라. 그러니 그이의 이런 흥분은 그이의 넘처 흐르는 부정에서 연유된 과대망상증(?) 증세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으리라.
잠자리에 들 때 마지막 부자의 해프닝이 또 한번 벌어지는 것이다. 그이가 이불 속에서 활짝 팔을 벌리면 아들은 나를 향해 슬쩍 개구장이 옷음을 지어보이고 나서 제 아빠품에 다이빙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곤 아침까지 한번도 엄마품을 찾지 않는 것이다. 일년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엄마품에서 젖먹으며 안겨 잤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까마득히 잊어 버린 채.

<서울 용산구 한강로>
『손거울』란에 투고하실 때는 반드시 반명함판 정도 크기로 밝은 표정의 사진을 동봉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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