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공부와는 담쌓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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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현재 한국 스포츠의 최대 허점의 하나가 지도자 빈곤이다. 따라서 60년대이래 더욱 심화 되고 있는 선수들의 공부하지 않는 습성이 이 지속되면 한국스포츠의 국제적 조류에 따른 발전은 백년하청이다. 선전적인 감각을 지녀, 또 경우에 따라선 부단한 노력으로 공을 기막히게 차고, 장쾌한 홈런을 휘날리고, 혹은 1백m를 총알같이 내달리는 훌륭한 선수라도 그러한 기술적·기능적 재질만으로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자는 전문종목에 대한 과학적 이론, 교양과 인품, 조직의 관리능력, 그리고 스포츠 행정에 관한 식견을 갖춰야 한다. 또 스포츠 선진국의 전문서적을 해득하는 외국어 능력도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교양과 상식과 분별력을 갖추는 일이다. 이런 자질은 정상적인 대학교육이 시행되는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스포츠계의 곳곳에서 편견과 무지와 아첨 때문에 분쟁이 일고 무분별한 스카우트의 쟁투가 벌어지는 것은 모두 이러한 근본의 허약 때문이다.
대학은 사회각개의 지도적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따라서 대학선수도 한날 각종 대회용의 특수학생으로 취급해서는 안되며 스포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소정의 교육과정을 최대한 이수토록 해야 할 것이다.
훈련에 전념하고 대회에 출전하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궤변이다.
모든 팀이나 개인종목선수들은 매일. 상·하오에 각각 2시간정도 연습하는 젓이 스포츠시즌의 통상적인 일과다.
선수들에게는 휴식도 필요하나 학업에 틈을 낼 수 없다는 것은 ,무관심과 태만을 얼버무리는 변명이다.
대부분이 체육학과 소속인 대학의 선수들은 교양과목은 물론이고 전공 학의 첫걸음인 체육원론조차 단1페이지를 읽어보지 않은 학생이 수두룩하다.
일부 고교선수들이 담임선생 이름을 모르듯 대학선수들은 흔히 학과목 담당교수와 소속대학장의 성함조차 모른다.
80년 2학기 때 축구스타 정해원(연세대)은 대학당국을 원망하며 자퇴를 불사하겠다고 발끈했다. 한 교수가 수강 한번 않고 시험도 치르지 않았음을 들어 학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교수는 운동선수의 실정을 모르는 고지식한 훈장이라고 스포츠계의 말을 듣기도 했지만 타성에 젖은 대학선수들과 학사운영에 결함이 있는 대학당국에 일침을 놓은 셈이다.
대학 축구팀이 인도에 원정을 갔을 때의 일. 어느 지방대학이 한국의 선수들을 캠퍼스에 초대, 환영회를 베풀었다. 그러나 양국의 대학생들은 다과를 들며 서로 어색한 미소만 교환했다. 한국대학 선수들이 단 한 명도 영어 한마디를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느냐』라는 유달리도 얼굴이 검붉은 한 학생의 질문에 한국의 임원은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한국의 선수들이 외국원정을 가면 인술 임원들은 별난 수고까지 해야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써야하는 탑승카드를 일일이 대필하거나 기재요령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장기간 여행을 하는 대학선수들의 휴대품에는 대학교과서가 절대 없다. 책이라고는 소설이나 대중잡지가 간혹 눈에 띌 뿐이다.
학창시절은 쉽게 보냈으나 졸업 후의 학사선수들은 곰 곤경에 빠진다. 직장에서 승진이 어렵고 마땅한 보직을 받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 20대 후반이 되어 운동을 그만두게되면 심각한 기로에 서게 된다. 이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빙상선수 A는 대학을 나와 서울 J여고의 교사가 됐다. 그는 출석을 부를 때 그저 『1번. 2번…』하고 만다. 출석부의 학생들 한자이름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 직을 곧 포기했음은 물론이다.
과연 운동과 학업은 병행할 수 없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는 실례를 다음 회에 소개한다. <박군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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