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있는 책읽기] 이웃끼리 겨눈 총끝 인간애로 풀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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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스며든 섬진강 가에 사는 소박한 사람들의 삶.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이는 농촌이나 그 속에는 민족의 비극과 더불어 역사에 상처를 받은 개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혀 있다.

36년간 일본 제국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지만, 우리 백성들 힘으로 이루지 못한 해방은 곧장 세계 이데올로기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좌익과 우익이라는 명목으로, 형제끼리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이웃끼리, 총을 들이대고 목숨을 빼앗고 서로 죽고 죽이는 원수로 돌변을 한다.

이 이데올로기 전쟁은 마침내 같은 동족끼리 총을 겨누는 한국전쟁을 불러일으켰다. 휴전 협정 때까지 3년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엄청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해서 불구가 되고, 국토는 파괴가 되고, 백성들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은어의 강'(김동영 지음, 원혜영 그림, 우리교육), 이 작품의 무대인 섬진강 가에 사는 사람들도 이 비극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전쟁도 끝난 70년대에 마을 아이들은 어느 날 뒷산 깊은 숲 속에 있는 여우굴을 찾아가는 모험을 한다. 백 년 묵은 여우가 살고 있다는 여우굴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가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찾아간 여우굴에서 아이들은 여우가 아닌 알 수 없는 뼈 무더기를 발견한다.

마을에는 여우굴에서 나온 뼈 무더기를 두고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바보 양아들을 둔 똥코 할배였다. 똥코 할배 아들은 빨치산을 잡는 토벌대였고, 할배와 마을에서 원수로 지내는 욕쟁이 할매는 빨치산 아들을 두었지만 둘 다 이데올로기 전쟁 중에 죽었다. 하지만 똥코 할배는 공산당 여인이 놓고 간 젖먹이 아들 바우를 키우고, 똥코 할배가 죽자 원수지간처럼 지냈던 욕쟁이 할매가 바보 바우를 품으면서 이데올로기를 극복한다. 그 어떤 사상이나 목적이라도 인간애를 넘어설 수는 없지 않으랴.

김정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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