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with] 또각또각 리듬 타니 어느새 한 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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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려도 할 수 없다. 시작은 만화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 푹 빠졌던 순정만화의 고전 '베르사이유의 장미'. 금발을 휘날리며 멋지게 말을 달리던 남장여자 주인공 오스칼의 모습은 환상 그 자체였다. 그 때부터 승마를 꿈꿨다.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백마 탄 공주가 되고 싶었다. 한데 week&에서 내 10년 꿈을 들어준단다. 축제 기간에 가려던 동남아 여행도 포기했다. 어느새 머릿속엔 온통 말, 말, 말…말 생각뿐이다. 대학 4학년 김은성(23)양의 두근두근 기수 체험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일 사부'는 한국마사회 승마단의 특급 코치.트레이너들이 맡아줬다.

정리=김한별 기자<idstar@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강아지도 안 키워본 그녀, 말을 목욕시키다

"좋은 기수가 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동물을 좋아해야 합니다. 말과 교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대담해야 합니다. 겁이 없어야 말을 제대로 다룰 수 있어요."

박재홍(40) 코치의 말이 비수가 돼 꽂힌다. 부모님이 싫어하셔 집에서 강아지나 고양이 한번 길러 본 적 없는 나다. 거기다 겁도 많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일단 급선무는 말과 친해지기. 타는 건 다음 문제다. 박 코치는 목욕을 해주면서 사귀어 보란다.

"갑자기 물을 끼얹으면 놀랍니다. 심장에서 먼 다리부터시작해 어깨, 엉덩이, 몸통 순으로 옮겨 가세요."

뭐야, 덩치가 크다뿐이지 애기 목욕시키는 거랑 비슷하잖아. 먼저 물로 샤워를 한 다음, 샴푸를 하고 다시 물로 씻어낸다. 물기를 털어내고 발통에 보습제까지 발라주면 끝. 녀석, 의외로 참 순하다. 내 서툰 손길에 이따금 움찔움찔 하긴 해도 그만하면 상당히 얌전한 편이다. 큰 덩치에 지레 겁먹지만 않는다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평보는 기본, 경속보까지 한번에

드디어 본격적인 말 타기. 원래 승마 경기는 마장마술과 장애물 비월, 그리고 두 경기에 지구력 경기를 더한 종합마술 세 종류다. 하지만 나 같은 완전 초보가 처음부터 선수를 흉내낼 수는 없다. 일단 말을 타고 천천히 걷는 평보 기술이 목표. 좀더 빠르게 걷는 속보까지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내가 탈 말은 '스페셜'. 호주산 열네 살짜리 말이다. 전재식(38) 트레이너는 "승마학교에서 가장 순한 말"이라며 아무 걱정 말란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어느새 다리가 후들거린다.

"발은 등자에 3분의 1만 넣으세요. 고삐는 손등이 위로 오게 잡고 엄지로 누르시고요. 허리는 곧게 펴야 합니다. 발뒤꿈치부터 정수리까지 일직선이 되게요."

올라타 '자세'를 잡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준비가 끝나자 드디어 출발. 전 트레이너가 '쯧쯧'하고 입소리 신호를 보내니까 '스페셜'이 걷기 시작한다. 어어, 근데 온몸이 출렁출렁 퉁겨 오른다. 하늘이 노랗다.

"겁내지 말아요. 무섭다고 고삐를 뒤로 당기면 말이 섭니다. 늘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당겨야 해요."

말을 탄 지 20분 만에 허리는 뻣뻣, 팔다리는 땡땡, 온통 난리다. 역시 말이 사람을 태우고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말을 타는 거다. 체력이 안 받쳐 주면 도통 조종이 안 될 듯싶다. 하긴 그래서 기수들은 매일 수영으로 기초체력을 다진다지 않는가.

뭐, 그래도 영 어설프진 않았나 보다. 전 트레이너가 속보를 해보잔다. 속보는 두 종류다. 기수가 그대로 앉아있는 좌속보와 말과 박자를 맞춰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경속보. 원래 경속보가 더 어렵다는데 내 경우엔 반대다. 그냥 앉아 버티는 것보다는 함께 몸을 움직여주는 쪽이 훨씬 낫다. 춤을 추듯 함께 리듬을 탄다고나 할까. 마치 말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전 트레이너도 이번엔 "잘한다"며 칭찬이다. "이야, 벌써 경속보야? 우리 강습생은 4일이 지나도록 아직도 좌속보인데…." 지나가던 다른 트레이너까지 거든다. 꾸부정했던 허리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아, 어쩜 좋아, 나 혹시 타고난 게 아닐까?

한나절 교육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무서워서 정신이 없었고 나중엔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데 차근차근 다시 배워보고 싶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초롱초롱 눈 맑은 '스페셜'도 다시 보고 싶고…. 당장 마사회의 정규 강습과정을 신청해야겠다. 혹시 또 알아. 사회인대회도 있다는데 열심히 배우다 보면 언제 진짜 경기라도 뛸 수 있을지. 아자아자, 미래의 승마 기수 파이팅!

■ 승마를 배우고 싶을 땐 …

한국마사회에서는 과천 경마공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승마강습을 하고 있다. 평일에는 수.목.금, 주말은 토.일 이틀간이다. 입문과정은 7일, 중급과정은 3일 코스다. 신청은 인터넷 홈페이지(www.kra.co.kr)를 통해서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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