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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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 집 문패는 참 신식이네요!』
우리집 문패를 처음본 사람들은 대부분 놀랍다는듯 그런 뜻의 말을 보내온다.
하기야 여자라는 그 이유 때문에 족보에 이름을 울리는 것조차 꺼렸던 우리네 관습에서 그이의 이름 옆에 조그맣게 쓰인 내 이름을 본 사람들의 놀라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운좋게도 집을 마련하고 새 살림을 차렸을 때.
하루는 퇴근해서 돌아온 그이가 품안에서 나무로 만든 문패를 꺼내 주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예뿐 문패에서 그이의 이름 곁에 조그맣게 쓰인 내 이름을 보았을 매, 그만 와락 그이의 목을 껴안고 말았다.
시집을 가면 「누구댁」「누구엄마」정도로 전락해 버릴줄만 알았던 이름을 떳떳하게 문패에 새겨줄 수 있는 남편이었다니!
『우리 꼬마한테 편지 잘 들어오라고 썼는데 마음에 드나?』
자꾸만 눈물이 번져 나올 것만 같아 등을 토닥여주며 묻는 그이의 말에 대답도 하지못하고 바보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문패에 쓰인 이름들도 어쩌면 그렇게 제 주인들을 꼭 닮았는지.
그이와 나란히서면 작은 내키는 그이의 어깨를 겨우 넘는데 문패에 쓰인이름조차 그이의 가운데 글자를 겨우 넘어선 모양이라서 흡사 서있는 우리들을보는 것만 같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이는 그해 겨울 「1971」년의 행운을 비는 것 근하신년 카드를 보내왔다.
떨어져 사는 연인 사이도 아니고 아침에 출근을 하면 어김없이 제 시간에 돌아오면서 능청맞게 우체부를 통해 카드를 보내주었던 그이의 그 따스한 마음은 열두해가 지난 지금도 소중하게 남아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하는 바람에 두번째 문패를 만들게 되었을때 그이는 첫번 문패와 똑같이 생긴 문패를 품에 안고 왔다.
한 집에서 여덟해를 사느라니까 나무로 만든 문패는 우리와 같이 살아 온 시간만큼 이젠 많이 낡아버렸다.
큼직하게 쓰인 그이의 이름을 발돋움하며 쫓아가는 듯한 앙증맞은 작은 이름을 볼 때마다 문패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남편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않도록 좋은 아내가 되라』고.
비록 칠이 벗겨지고 낡아서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문패이지만, 문패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묵묵히 내 곁을 지켜온 낯익은 그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 차마 새 것으로 갈아치울 수 있는 용기를 갖지 못하는가 보다. <경기도안양시안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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