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은 정부나 어느 한 기관의 책임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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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학교와 집 사이를 매일 오가며 늘 분주하기 만한 일과 중에서 요즈음에는 수필을 쓴다는 겻 자체가 대단한 사치처럼 느껴진다.스스로 한 약속과 한번은 깊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만 없었던들 수필을 써야 하는 부담에서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이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사립 대 조기교육 유아원에 대해 상당히 왜곡된 글을 읽은 것이 아마도 한번은 써야 할 재기를 마련했다고 생각된다.
조기교육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그 글의 서두에서 처럼『시설 개방…뒤늦게 하는 게 고작』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면 정말 할 말을 잃을 뿐 무지를 탓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왜 그 기사가 유아원이란 용어조차 생소한 독자를 대상으로 유아원의 전체적인 모습이 아닌 부분적인 기술에 그토록 집착했는지,꼭 그래야만 사회면 기사가 되는지를 질문하고 싶었다. 그 당시의 적했던 감정은 이미 가시고 없지만 일종의 지각 왜곡현상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보면 사람이나 사회기관 또는 국가에 대해서도 잘 하고 있는 점보다는 잘못하는 점을,전체보다는 부분을 발견하기 더 쉽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그리고 잘못하는 점을 계속해서 지적하고 문제시하는 가운데 그나마 발달할 여지마저 없애버리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는 생각도 든다.
복수교육을 강의하는 분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장애아를 지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원리의 하나는 그들의 부족한 점을 교정하는 것보다도 그들에게서 우수한 점을 우선 발견하고 이를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강하게 만들고 강해진 자아의 힘으로 부족했던 측면의 비극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 원리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인간 누구에게나 부족한 면 뿐 아니라 탁월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발견해 내는데 있다고 본다.장애아에게서 우수한 측면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그러나 맹아의 촉감이 뛰어난 점이나 정박아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점 등이 이미 이들의 지도에 널리 적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유아 교육은 7O여년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아직 극히 소수에 그칠 뿐 아니라 교육내용과 질적인 면에서도 합상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국가에서 이를 중시하고 발전을 꾀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한편 유아교육의 철학적 입장이나 이에 따른 교육 내용과 방법,그리고 환경 조성면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모험이 개발되고 연구 되어야만 한다.
이런 작업은 유아교육의 질적 향상이란 면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며 대학부설 유아원은 그들 나름대로 외부의 지원없이 이 같은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고 자부한다.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시도만이 아니라 교육시설과 자료 개발,아동발달에 관한 기초관이 담당하는 중요한 과업이다.
유아교육을 문교부나 어떤 교육기관만의 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달려있는 오늘의 어린이들, 그들의 바른 성장과 발달에 관한 일이다. 이에 관심을 가진 모두의 노력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날이 갈수록 각박 해져가고 살벌하기 만한 삶의 주변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현실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사고와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아닐까 한다.행여 우리의 눈이 그늘진 곳에만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벗이 있기에 그늘도 있고,어제가 있기에 오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약력▲1941년 생▲1964년 이대 교육심리학과 졸업 ▲74년 미오하이오 주립대 박사(교육학) 학위 취득▲76년∼현재 연세대 가정대학 아동학과 교수▲77년∼현재 연세대 어린이 생활 지도 연구원 원장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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