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말기암 중국인 밀수범 처리 … 법이냐 인도주의냐, 검찰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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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말기암 투병 중인 중국인 밀수범의 처리를 놓고 검찰이 고민에 빠졌다. 벌금·추징금 미납액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그를 중국의 가족에게 돌려보낼지, 국내에 묶어놓을지 마땅한 해법이 없어서다.

 중국동포 이모(36)씨는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물건을 파는 이른바 ‘보따리상’이다. 귀금속 등을 주로 취급하던 그는 지난해 8월 변모씨 등과 함께 금괴를 밀수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구한 금괴를 옷 속에 숨긴 채 배를 타고 평택항으로 들어오는 ‘운반책’ 역할이었다. 1300만원을 받은 이씨는 두 달간 14번에 걸쳐 102㎏, 39억여원 상당의 금을 국내로 들여왔다. 그는 함께 일하던 변씨가 세관직원에게 적발되면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 대해 지난 6월 말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36억여원 및 추징금 52억원을 선고했다. 이씨가 항소를 포기해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하지만 이씨가 지난 7월 초 간암 4기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치료를 받아도 길어야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검찰에 ‘생명이 위독하니 인도적·외교적 차원에서 중국으로 돌아가 가족 품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게 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출국정지를 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중국에는 그의 아내(29)와 딸(2)이 살고 있다.

 이씨 요청을 받은 검찰은 딜레마에 빠졌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라면 당연히 보내줘야겠지만 미납 벌금·추징금이 총 88억여원에 달하는 거액이라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씨는 국내에 재산이 전혀 없고 중국의 가족도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씨를 중국으로 보내면 사실상 벌금·추징금 환수는 불가능해진다.

 중국 사법당국이 지난달 초 마약 밀거래 혐의로 한국인 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점도 부담이다. 우리 정부가 사형 집행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만 인도적 자세를 견지하기는 어렵다. 현재 검찰은 여러 루트를 통해 중국 정부가 벌금 집행을 위한 담보를 제공하는 등의 조치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사를 타진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어 의료 지원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는 등 가능한 조치는 하고 있다” 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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