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색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도 이제「폴리크롬」(다색)시대에 살게 되었다. 단색(모노크롬)문화에서 다색문화로의 변화는 사진 문화에서「무비문화」로 바뀌는 것만큼이나 형식적이다. 「그리스」나「로마」의 고전문명은 흔히 사색을 띠고 있다. 지중해의 감벽색, 하늘의 푸르름 등 청색적 자연을 기조로 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런던」「파리」「뒤쎌도르프」「빈」등은 그 색깔이 사뭇 어둡다.
탐색조다. 아마 석탄연기, 하늘빛, 기후 등의 영향일 것이다.
심리학자 가운데 빛깔은 마음을 말한다는 사람도 있다.
개인의 마음 뿐 아니라, 민족의 마음까지도 색채에 나타난다.
「프랑스」지중해 연안의「마르세유」는「버스」의 외장·상점원의 복색, 집들의 지붕과 벽 등이 온통 푸른빛이다. 지중해의 빛깔을 그대로 거울에 비쳐주는 것 같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둔「이탈리아」는 찢은 듯이 다르다. 녹색이 연연(연연)하다. 비가 적은「이탈리아」의 풍토감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유럽」은 전통색이 따로 없는 것 같다.「로마」에서 유행하는 옷이「파리」에서도 인기가 높다.
한때 영화속의「에마뉘엘」부인이 입었던 옷의「카키」빛이 전「유럽」을 휩쓴 일도 있었다. 바로「컬러·텔리비전」이 등장하고 나서 TV의 국경이 거의 없는「유럽」이 대륙은 온통 유사색채의 문화권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의「폴리크롬」문화는「아시아」제국 가운데서도 후진인 셈이다. 우리와 경제환경이 비슷한 이웃 대만은 벌써 1969년 10월부터「컬러」TV를 방영했었다.
그때의 1인당 GNP는 겨우 3백45「달러」였다.「필리핀」이나 태국은 대만보다 훨씬 뒤늦은 1974년부터였지만 국민소득은 2백50「달러」수준에 지나지 않았었다. 일본 역시 GNP가 4백58「달러」일때(1960년) 「컬러」TV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한때 대만 사람들은 한국의「컬러」TV축출을 비웃은 일도 있었다. 색맹 문화속에 살면서「컬러」TV를 만들어 파는 것이 우습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젠 이 옷의 빈축을 면하게 되었다.「컬러」TV는 문화적인 위격 뿐 아니라 기술적인 충격도 생각할 수 있다. TV가 전자공업의 꽃이라면「컬러」TV는 그 꽃 중에서도 장미와 같은 위치에 있다. 그만큼 정성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전자제품인 것이다. 이런 기술도 결국 수요가 왕성해야 활로를 찾게 된다. 수요없는 기술은 역시 뿌리없는 나무와 같다.「컬러」TV시대는 그만큼 상미적인 의미를 갖는다. 종합문화로서, 종합기술로서「파일러트」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