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 국제현안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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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위원회의 대북 결의안 처리(16일.제네바)를 앞두고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53개 회원국 중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국가는 중국.쿠바 등 극소수인 데다 일부 비동맹 국가들은 기권할 가능성이 커 통과가 유력하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 결의안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EU) 주도로 지난 10일 제출됐다. 북한 내부의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권위반 실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사상.종교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극심히 제한하는 실태와 고문 등 잔혹한 대우와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등에 대한 문제를 비교적 소상히 지적하고 있다고 한다.

인권 관련 비정부 전문가로 짜인 유엔 인권소위가 1997년 북한의 인권탄압을 고발하는 결의안을 낸 적은 있지만 이번 결의안은 정부간 모임인 인권위가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채택될 경우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부각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북한은 97년 결의안이 통과되자 국제인권규약 B규약(시민.정치적 권리)을 탈퇴했던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어떤 형태로든 반발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인권문제를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에 이어 북한체제를 압살하기 위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음모라는 시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지난달 연례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유린을 지적하자 "우리 인민은 참다운 권리와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3일.외무성 대변인) 즉각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정권은 주민을 굶주리게 하는 체제"라고 공언하고 있어 자칫 인권문제에서 국제여론에 밀릴 경우 체제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정부도 남북 관계의 지속과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 여론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심한 끝에 윤영관(尹永寬)외교통상부 장관이 15일 국회답변에서 표결에 불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북송금 특검 강행과 이라크전 파병 결정으로 가뜩이나 북한의 시선이 차가운 상황에서 인권 문제에 대해 날을 세울 경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북핵 문제의 다자간 해결 방안 등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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