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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치의 낭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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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흔히 쓰이는 단어 ‘낭패’는 두 마리 짐승을 뜻한다. 사전은 랑(狼)과 패(狽)를 모두 ‘이리’로 설명하지만 전설적 동물에 더 가깝다. 랑은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은 동물이다. 반대로 패는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다. 그래서 서로 의지해 나란히 걸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떨어지게 되면 넘어지고 만다. 그래서 당황스러운 상태가 바로 ‘낭패’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를 볼 때마다 이 단어가 떠올랐었다. 아무리 공동대표라지만 저리 한 몸처럼 움직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각기 다른 곳에 행차하면 효과가 배가될 수도 있을 텐데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나뉘면 곧 낭패인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이번 재·보선 결과를 보니 함께 하는 게 오히려 낭패가 아니었나 싶다. 서로 다른 길이의 다리로 함께 걷다 보니 스텝이 자주 꼬였다. 전략 없는 전략 공천은 그런 합작품 중 최악이었다. 최대 격전지에 중도 사퇴할 후보를 내 스스로 관전자로 전락하고 말았고, 유권자들의 적극적 심판(최고 투표율)에 알짜 텃밭을 반대당 대통령의 분신이랄 후보에게 내줬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선거 같았던 지역에서 이기긴 했지만 유권자들의 철저한 외면(최저 투표율)으로 빛 바랜 승리가 됐을 뿐이다.

 어울림 없는 다리 길이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부동시(不同視)라는 치명적 문제가 후유증처럼 따랐다. 둘이 한 몸 됐다면 네 개의 눈으로 더 큰 세상을 봤어야 했다. 남들 못 보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게 곧 입만 벌리면 떠들던 ‘새 정치’일진대 그저 입 안에서만 그쳤다. 두 사람 눈은 서로 다른 곳을 응시했고, 불행하게도 양쪽 시선의 끝 모두 구태의연 ‘헌 정치’가 있었다. 쉰내 나는 정권심판론과 구차한 발목잡기는 유권자를 속이지 못했고 유혈이 낭자한 선거 결과를 낳았다.

 내친김에 한자풀이 하나 더. 낭자의 낭도 낭패와 같은 랑(狼)자다. 자(藉)는 풀을 엮어 만든 깔개를 일컫는다. 곧 낭자는 ‘이리의 잠자리’란 뜻이다. 이리가 깔끔 떠는 동물이 아니다 보니 잠자리가 좀 지저분한 모양이다. 그래서 낭자는 어지러이 흩어진 모양을 가리킨다.

 두 공동대표는 퇴진도 함께 했다. 하지만 정녕 낭패를 겪지 않으려면 사리당략으로 어지럽게 흐트러진 당부터 일신하는 게 우선이다. 모름지기 국민을 겁내는 마음부터 되찾아야 할 터다. 국민은 유혈이 낭자한 자리를 뒤돌아봐줄 만큼 너그럽지 않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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