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사하로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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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련공당 중앙위원 「브레즈네프」, 소련당 수상 「코시긴」,
친애하는 동지제군…
지식인이 정보와 창조적 활동의 자유를 확대하려 노력하는 것은 정당하며 또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런 노력을 온갖 제한-행정상의 역력·파면·재판-을 써서 억압하고 있다….
소련의 국가훈장을 셋이나 받은 「아카데미」회원 「사하로프」는 70년에 대담하게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런 성명서를 냈다.
이보다 2년 전에 그는 이미 『진보·평화공존 및 지적자유』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부터 그는 「솔제니친」과 함께 소련공산당엔 가장 골치 아픈 눈의 가시가 되었다.
그는 그 후 수없이 국가보안위원회의 심문도 받고 협박도 받았다. 그래도 그는 굽히지 않았다.
74년엔 미 「프린스턴」대학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이때 그는 장기외국체재 「비자」를 신청하려다 말았다.
영 귀국하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한 때문이었다.
소련의·반체제 지식인들에게 있어서는 국외추방이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해방과 자유를 뜻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것은 「솔제니친」의 말대로 『역방향의 체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륙하려고 비행기가 진동할 때 나는 십자를 긋고 사라져 가는 대지에 큰 절을 했다.』
국가보안위원회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렇게 국외 추방될 때의 단장의 쓰라림을 「자전」에서 기록한 「솔제니친」은 또 다른 반체제의 지도자였던 수학자 「샤파레비치」의 말을 그대로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러시아」이외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마치「저쪽」에는 공기도 물도 없다는 듯이 『살수가 없다』며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
탄압과 병과 고독 속에서 「파스테르나크」가 끝까지 당국에 애원했던 것은 『제발 국외로 추방해 주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자의 반·타의 반으로 서구로 망명한 음악가 「로스트로포비치」는 지금도 시효가 지난 소련의 여권을 가장 소중히 지니고 다닌다.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비원인 것이다.
지난 75년에 「사하로프」박사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수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의 여권신청이 거부된 것이다. 이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오슬로」여행이 국가기밀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거부된 만큼 당국은 나를 국외추방, 시민권을 박탈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토록 「러시아」에 남겠다고 안간힘을 쓰던 「사하로프」가 결국 소련 안 오지로 유배당했다고 한다.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차단 당하게 된 쓰라림이 조국에서 쫓겨난 슬픔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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