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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다는 대통령, 보는 사람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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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경전이자 지금도 제왕학의 기본서로 통하는 한비자(韓非子)에선 집권자(군주)가 안정된 지배를 위해 절대로 나눠 가져선 안 되는 권한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인사와 상벌권이다.

 인사는 어렵다. 칭찬을 근거로 발탁하면 신하들은 자기들끼리 패거리를 만들고, 파당 관계로 임용하면 민간은 사적 교제에만 힘쓴다. 패거리들이 파당을 만들어 저희들끼리 추천하고, 큰 잘못을 저질러도 저희들끼리 은폐한다. 상벌권을 나누면 사악한 신하는 자기가 미워하는 자를 교묘하게 모함해 처벌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자는 교묘하게 상을 주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충신은 죄 없어도 위태롭게 되고, 간사한 자들은 공이 없어도 편히 즐기고 이득을 보게 된다.

 또 진시황을 ‘한비앓이’로 만들었던 ‘고분(孤憤)’편엔 일을 엄격하게 처리하고 간악함을 바로잡으려는 능력 있는 인재들을 소위 요로의 실권자들이 어떻게 모함하고 죽이며 나라를 어지럽히는지 소상히 기록했다. 한비는 능력 있는 인재와 정치 요로의 실세들은 양존할 수 없는 적대관계라고 했다.

 왜 그럴까? 군주와 신하의 이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군주의 이익은 능력 있는 자에게 관직을 맡기고, 공로에 따라 작록을 주고, 호걸에게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있다. 하나 신하의 이익은 무능해도 자리를 차지하고, 공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파당을 짜서 사리를 도모하는 데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사악함을 경계하고 질서를 잡을까? 한비의 답은 분명하다. 법에 따르라는 것. 법술을 밝히고, 인사와 상벌을 법에 의거해 공명하게 처리하고 자의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럼 한비의 관점에서 우리의 현주소는 어떨까? 문창극 총리후보가 자진사퇴 후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말을 전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검증을 해서 국민의 판단을 받기 위해서인데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다.” 한데 문 후보가 인사청문회에 못 간 이유는 대통령이 청문요청서를 재가하지 않고 계속 미루며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인사권을 행사하는 일은 집권자인 대통령의 일이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남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니 보는 내 마음도 안타깝다. “집권자가 인사를 장악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는 한비의 경고는 2000여 년 전 나온 것인데, 지금도 옛말로만 들리지 않으니 걱정스럽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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