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양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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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여의도 수정「아파트」의 어린이 피살사건은 단순한 형사사건만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엄청나다.
이것은 범인이 누구냐, 수사가 어떻게 되었느냐, 왜 못 막고 못 잡았느냐, 하는「사건」적 측면만이 문제인 것이 아니다.
범인이야 언제인가는 꼭 잡힐 수도 있는 것이고, 검찰 역시 그 많은 도시민들 하나 하나의 내실까지 일일이 다 지켜줄 순 없는 것이다.
문제는『아무리 강도라 하지만』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으며 세태 한구석이 어째 자꾸만 이렇게 되어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자신의 일이 아닌 이상 그까짓 강도사건이나 살인사건쯤은 뭐 별로 그렇게 놀라운 일로 받아들이질 않는다.
세상이란 본래 그렇게 험한 법, 도둑이나 강도 역시 하나 둘이 아니고, 사건도 일단 났다하면 으례 사람 하나 둘쯤은 죽게 되어있는 것, 정도로 치부해두거나 체념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만성적 면역상태와 병행해서 범인들의 폭행 양상 역시 갈수록 고 단위화하고 있다. 단순한 위협적 폭력이나 우발적 폭행치사 또는 대등한 폭력간의 싸움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무모한 잔인성과 치사한 폭력을 일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털어 봐야 단돈 몇 만원도 안 나오는 외딴 가옥의 노파를 살해하고 그까짓 물건 몇 개를 집어간다든지, 또는 주부가 외출한 사이 무력한 어린이를 살해하고 기껏 5만원 짜리 반지 한 개를 가져가는 일 따위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무도하고 치사스런 폭력범죄가 며칠이 멀다고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태 한 구석이다.
도대체 몇 십억도 아닌 몇 만원 때문에 어떻게 그렇게 귀여운 여자 아이 하나를 예사로 타살할 수가 있으며, 그런 끔찍스런 마음과 행동이 어째서 그렇게 갈수록 흔해진다는 것일까.
사람들은 가끔 이런「마음과 행동」을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핵가족화의 불가피한 부산물인양 체념해 버린다. 마치 산업화는 범죄 증가와 흉포화를 숙명적으로 동반한다는 것 인양.
그리고는 미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지 않느냐는 식으로 자위하려든다.
그러나 그 말이 실제로 옳은 측면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산업화의 어두운 부산물 파생에 있어서까지 굳이 남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은 이상하다.
산업화도 좋고, 도시화·핵가족화도 모두 불가피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 나름으로의 보다 질적으로 개선된 산업화「패턴」을 추구하고 정립할 순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의 심성을 거칠고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만들지 않는 상태에서의 산업화- 다시 말해 도의와 인륜·인정·도리를 메마르게 하지 않으면서 진행되는 산업화 말이다.
우리는 이것이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딜 것이라고 믿고 싶다.
기계적이고 종적인 인간관계 못지 않게, 자생적이고 횡적인 연대의 기풍을 진작시킨다든지,『무슨 수를 써서라도』보다는『사람이 할 짓 있고 못할 짓 있다』를 더 많이 강조하는 분위기 조성 등이 그 한가지 시도 일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고 아무 힘도 없는 12살 짜리 소녀 지희양의 죽음. 이것은 단순한 형사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어른들의 자괴와 책임감을 일깨워 주고 또 일깨워주어야만 하는 중대한 근본문제요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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