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봇물이 터진 듯…|「유럽」의 중공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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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유럽」의 중공 「러시」는 대단하다.
신문에는 거의 매일같이 중공 방문기, 중공과의 새로운 거래 계약, 중공 대표단의 「유럽」이 방문 보도, 또 새로운 중공의 문호 개방 정책을 설명하는 해설 기사 등 중공 이야기가 그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일본·서독이 이미 중공 시장의 큰 몫을 먼저 차지했지만 앞으로 영국도 대 중공 무역량을 20배쯤 늘릴 수 있다는 전망 기사도 나왔다.
「런던」의 한 중공 전문가는 이러한 분위기를 『배가 막 떠나기 전의 부두』 같다고 비유했다.
모두가 중공 행 배를 타려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성은 이쪽에서만 아니다. 중공 쪽에서도 1만명 이상을 해외에 파견해서 외국어를 익히고 기술을 배워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유럽」의 관계국은 유학생 수가 수용 능력에 벅차 파견자 수를 줄여야 할 정도다. 일례로 영국은 5백명 정도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지만 중공 당국은 그 수를 2천명으로 늘리자고 요청하고 있는 형편이다.
엄격히 폐쇄되어온 중공 내부를 외국인들에게 개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최근 3명의 중공 관광 공사 직원들은 영국 관광 회사의 초청으로 지중해의 「말타」를 방문, 「유럽」의 대규모 관광 사업의 실정을 샅샅이 시찰하고 돌아갔다. 급증하는 중공 방문객을 서구식으로 안내하려는 첫 시도 같다.
지금까지 서방 세계와의 관문 역할을 해온 「홍콩」과 광동 사이의 철도 대신 최근 하루에 두번 취항하는 여객 항공 노선이 개설되었고 「홍콩」∼상해간의 하루 1회의 항공 노선도 현재 교섭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홍콩」∼광동간에 「호버크래프트」선 노선도 계획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5개 관광 회사들이 내년도 중공 관광단을 벌써부터 모집하고 있다.
이처럼 봇물 터지듯 급속도로 진행되는 중공 「러시」 현상은 「바르샤바」 동맹군의 군사 위협과 경제적 불황에 시달려온 서구에는 우선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래서 「떠나는 배」를 얻어 타려는 현상과 같은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거대한 변화가 단순히 서구를 위해 새로 시장을 제공해 주는 기회 정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론도 대두되고 있다.
즉 중공이 서구에 접근하기로 한 결정은 전적으로 전략적인 동기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공은 지금까지 미국·소련 두 핵 강대국으로부터 똑같이 핵 공격의 위협을 받는 유일한 나라다.
그런 약점에 비해 자체 산업 능력이 너무 뒤떨어져 있다는 자각이 서방 기술 도입의 동기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정책은 자력 갱생 원칙의 포기가 아니라 그 방법론의 수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이는 곧 청말의 자강 운동, 건국 초기의 소련 기술 도입 등 과거의 경험과 맥락을 같이하는 현대화 운동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중공의 문호 개방은 한계가 분명하며 서구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고」의 형태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따라서 서방이 중공에 기술을 제공하더라도 거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어야 된다고 「런던」 경제학 연구소 (스쿨·오브·이커노믹스)의 「마이클·야후딘」 교수는 경고했다.
중공의 서방 진출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현지에서는 아직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농가공품·학용품·시계 및 공업 제품 등이 우리 상품과 마찰하는 품목인데 중공이 본격적인 시장 침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서로 경합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중공이 기술 도입으로 외환의 수요가 급증하면 수출도 보다 조직적으로 대량화할 것이 확실하므로 한국 수출업계는 어려운 경쟁 상대를 만나게 될 것 같다.
【런던=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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