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 전술적 후퇴 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괴가 금년도「유엔」총회에서「공산 측 결의안」을 철회하기로 한 이유는 표 대결의 승산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북괴가「유엔」에서의 표 대결을 일단 포기한 이상 우리로서도 구태여 서방측 결의안의 상징을 고수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우리측은 애초부터「유엔」에서의 한국문제토의의 불모성에 착안하여 오직 남북한당사자 사이의 직접대화만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유일한 통로임을 역설해 왔기 때문이다.
북괴의 태도변화를 가리켜 그들의 정책변화나 전략변화를 못한다고 선뜻 속단할 수는 없다. 단순한 전술적 후퇴일 경우라면, 저들은 당장 내년에라도 승산여하에 따라서는 표 대결을 시도하려 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이번의 북괴의 후퇴가 그 어떤 장기적 국면변화의 계기라도 마련해준 것이라면, 우리측으로서는 남북대화와 당사자회의라는 기존방침을 더욱 효과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전략을 재정비해야 하겠다.「유엔」외교계의 분석에 의하면 북괴의 전술적 후퇴 이면에는 비동맹일부의 태도변화와 동구권 일부의 미묘한 작용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 되고있다.
비 동맹권의 27개국은 이미 지난번「콜롬보」회의 때 북괴의 조작된「북침 설」에 등을 돌렸지만, 그 직후에 일어난 8·18만행으로 인해 심지어는 동구권까지도 북괴의 망동에 대해 고개를 내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금년 총회에서의 북괴의 치명적인 열세를 미리부터 결정지어 놓았으리라는 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경향을 한 걸음 더 연장시켜 추리할 경우, 이번의 북괴의 열세는 바로 그들의 투박한 외교감각 내지는 그 권력구조의 경직성 자체가 자초해 놓은, 어쩔 수 없는 한계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상 오늘의 세계에서 국제외교의 관례를 무시한 북괴의 억지와 생떼가 더 이상 용허 될 여지는 없는 노릇이다.
한반도문제를 논의하자 하면서 한국을 도외시한 채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주장하는 것이나, 남북대화나 휴전 당사국간의 실질적인 토의보다는 실효성 없는「유엔」결의에 집착하는 따위는 하루라도 빨리 종식돼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그런 비상식적인 생떼가 작년 총회에서의「동시통과」로나마 간신히 이어져왔던 소이는 오로지 공산권의「국제주의」때문이요, 비동맹일부의 인식착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번의 결의안 철회를 계기로, 동구권이나 소련 및 비동맹국들은 종래와 같은 허무맹랑한 북괴「프로파간다」에의 부화노동을 시정,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에 호응해와야 마땅할 것이다.
한반도문제는 정치적 선전이나 비현실적인 억지를 떠나 오직 공존원칙과 형평정신에 바탕 해, 실현 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에서만 실질적인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당사자회의를 통한 휴전상태의 구조화, 남북대화를 통한 불가침의 제도화와 점진적 교류확대 등 우리측의 일련의 제안들이 바로 그러한 취지에서 나온 현실적인 방안들이다.
이번의 공산 측 결의안의 철회가 단순한 전술적 후퇴이든, 또는 그 이상을 함축하는 것이든 간에 소련·동구권은 차제에 우리측의 성의 있는 평화방안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으면 안될 국면을 맞이한 것이라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