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받는 현대독일문학-재독 박찬기 교수가 부해준 현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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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때 「유럽」문학의 선두주자였던 독일문학이 근년에 이르러서는 매우 저조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와같은 독일문학의 현황에 대해 서독 「훔볼트」재단초청으로 서독에 체류 중인 박찬기 교수(고대·독문학)는 다음과 같은 소식을 본사에 전해왔다. 【편집자주】
최근 영국의 저명한 독문학자 「J·P·스턴」이 독일의 문단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하자 독일의 권위지인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가 이 글을 의례적으로 크게 인용보도, 독일문단을 뒤흔들어놓았다. 『과거의 찬란한 업적에 비해 독일문학이 점차 그 빛을 상실하고 있다』는 논란은 자주 있어 왔지만 영국의 독문학자가 독일문단을 공박한 것은 전래 없던 일이었다.
실상 영·독·불 세 나라는 여러모로 서로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으면서도 문학 내지 문화전반에 걸쳐 항상 거리를 유지해 오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왔었다.
「스턴」의 글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전후의 독일문단에는 몇몇 재주 있는 작가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결국 「하인리히·뵐」과 「귄터·그라스」의 2명 외에는 두드러진 작가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
둘째, 「뵐」의 특색은 솔직 담박한 문체와 사회참여를 전제로 한 도덕성이라고 일컫는데 그의 언어표현은 그 내용에 부응하는 독자적 문체에 도달되지 못한 감이 있다.
서독의 시단은 그의 이른바 「보고형식」체를 높이 평가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가 독자적 새 문체(이를테면 20세기초의 위대한 독일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를 개발하지 못한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
셋째. 이와 똑같은 결함은 「지그프리트·렌스」의 『독일어시간』에서도 지적될 수 있는데 여기서도 「뵐」과 마찬가지로 언어 표현의 미숙과 일반화되지 못한 도덕성(사회참여) 이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
넷째, 「뵐」의 소위 「후모르」(유머)도 보잘 것이 없어 오히려 「그라스」의 「새타이어」(풍자)에도 못 미치는데 이 점은 「그라스」의 『양철북』과 비교하면 쉽게 드러난다는 것.
다섯째, 「뵐」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숙녀와 군상』을 관찰하면 그 속에 풍기는「에로틱」한 활력소, 또는 추악 내지 저속에의 접근이 이미 「그라스」에 의해 시도되었던 수업들이며 「뵐」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의 「모럴리즘」 때문에 「그라스」의 경우만큼 극단화 내지 개성화되지 못하는 약점을 노출한다는 것 등이다.
결론적으로 「스턴」은 독일문학의 전통과 「나치스」시대의 악몽이 「뵐」「그라스」「렘스」등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작용이 표면적으로는 반발 내지 묵살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잠재적으로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턴」의 이와같은 관점이 과연 어느 정도 적중하는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오늘날 독일문단의 저조상이 너무나 심각하여 지난날의 위대한 전통을 생각하면 하나의 위기에 이른 느낌을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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