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승 우연 홍익표선생을 하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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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거칠고 사나운 정계에서도 항상 봄바람처럼 훈훈하시던 우연선생. 궂온일은 자눌하시고, 영광은 꼭 남에게 돌리시던 우연 홍익표선생.
한평생 나라와 겨레와 당과 동지들을 위해 가지신 모든것을 남기지 않고 공인의 도리를 다하신 선생께서, 정치일선을 물러나 3년이 지난 오늘, 구석진 골목 비좁은 집에서 나이어린 자녀들을 남겨두고 눈을 감으시니 인생의 무상이 더없고, 정치의 비석이 뼈저립니다.
항일·반공·반탁·건국·호혜민주투쟁을 담당한 회세대의지도자로서 마지막 남은 선생마저 행장을 거두시니 선배들의 높은 뜻을 승직할 채비를 다갖추지 못한 저희는 땅이꺼진듯 아득하고 막막합니다.
지난 30년동안 남다른 사랑을 한결같이 받아온 저는 더욱 어찌할바 모르겠읍니다.
우연선생, 괴롭고 답답할때면 선생을 찾아 뵙는것만으로도 가슴속 응어리가 풀렸는네 저희 야당이 최악의 상황에 부닥쳐 있는 이때 한마디 가르침도, 꾸지람도 없이 다시못오실길을 홀홀히 뗘나시니 이제 누구를 잦아 앞날을 상의하며 누구와 더불어 상봉하솔의 도리를 다하리까.
정정하신 선생께서 10월 사태직후 경계은퇴를 선언하실때 만류하지 못해 오늘 이처럼 일찍 돌아가신것이 아닌가하고 부질없는 생각마저 갖게 됩니다.
그때 선생을 찾아 뵙고 『5·16후처럼 난감하던 때에도 맨먼저 야당재전에 발벗고 나선 선생께서 이제 잔명조차 위태로운 야당을 이끌어주지 않으면 어찌 하느냐』고 손을 붙잡고 울던 저에게 선생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지금 이 시간에도 쟁쟁히 기억됩니다.
『정치인은 진퇴의 적기를 알아야 하네. 나는 더이상 선·후배들에 대한책임을 감당할 힘이 없어, 은퇴하는 것이 유일한 속죄의 길이라고 생각하네.』
『그렇다면 저도 그만두겠읍니다』고 일어서는 저에게 『정치는 1분1초도 중단할수 없는 것이니 연부력강한 자네는 동지들과 자손들을 위해 권토중내할 생각으로 계속해나가게. 그것이 이제 자네의 의무일세.』
우연선생!
모두가 일신의 형회를 탐하는 세상에서 오직 겸양과 희생을 알뿐 일신의 명리는 안중에 없고 청빈악도의 길을걸은 선생의 일생은 저희 후진에게 가장 값진 귀일이 아닐수 없읍니다.
명문거족의 맏아들로 태어나 최고학벌을 갖춘 수재로서 일제에의 협력을 거부하고 지리에 묻혀 젊은날을 보내실때부터 선생의 고절은 남다른바 있었습니다. 해방직후 대대로 물려받은 문전옥답마저 소작인들에게 모두 무상분배하는 데서부터 고관현직까지 남에게 넘겨 주기를 좋아하신 선생의 도량은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제헌국회때는 친일파와 항일파, 2대국회때는 도강파와 잔류파, 그후는 자유당파 민주당, 또 민주당내의 신·석파, 그리고 5·16이후 정치적 격동이 소용돌이칠 때에도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인사들까지 선생에 대해서는 칭송해 마지않았던 그 인품은 다시 접할길이없게 되었읍니다.
민주당을 창대할 당시부터 선생처럼 야당살림을 알뜰하고 윈만하게 꾸려갈 인물이없어 수년동안 총무부장직을 계속 맡아보아야 했던 선생의 성실은 야당사의 전설로 길이 남을것입니다.
언행일도 어려운 법인데 선생은 무언으로 오직 실행밖에 모르신 분입니다.
제 2공화국의 내무장관으로 취임한지 보름이 지날즈음 거국내각문제가 대두하자 아무 말없이 노표를 제출해서 몸소 그길을 터주신 선생의 태도는 이 나라가 존속하는한 모든 공직자의 사표가 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즐곧 야당활동을 하시면서도 대여투쟁에있어 원칙을 양보하는일없고 그렇다고 결코 시백논리에 따르는 일도 없으신 선생이기에 일거수일투족이가장 무섭고 무거운 야당지도자로 이땅의 유정사에 뚜렷이 기록될 것입니다.
틈틈이 낚싯데를 드리운 고향의 청평호반처럼 깊고 맑게 일생을 살다 가신 우연선생이시여-.
이 세상에서 심혈을 기울이신 이땅의 대의정치가 소윈대로 실현되도록 저 세상에서도 굽어 살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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