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원자재 값의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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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의 주요 원자재 시세가 전반적인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한다.
지난 73년 이후의 혹심했던 자원 파동을 기억해보면 이런 변화는 일단 매우 고무적이다. 그 바탕이 가공 수출형인 우리 나라로서는 원자재의 안정·지속적 공급의 보장이 특히 중요하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나위도 없다.
더우기 우리경제와의 관련이 깊은 주요 1차 산품의 값이 대체로 더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자원문제에 관한 한 이런 일시적인 수급상황의 변화가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은 안정적인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 아직도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전망의 주요부분은 자원소비국들의 과잉대비에서 비롯되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자원파동에 혼이 난 세계의 주요 대량소비국들이 이제 저마다 자원의 안정적 공급 확보를 위해 열을 올림으로써 더욱 격화된 또 한차례의 파동을 조만간에 만들어낼 가능성을 은연중에 키우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원자재 시세 하락도 근본적으로는 선진공업국들의 현저한 공업생산 감퇴를 반영하고 있을 뿐 세계자원 수급의 기본 틀이 안정화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6월 들어서의 전반적인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원모·생고무·고철 등 일부 품목이 관련업종의 경기상승 국면과 때를 맞추어 다시 반등하고 있음은 이 때문이다.
일본의 때이른 원자재 매점에서 보듯이 자원대량 수요국들의 원자재 과민반응은 앞으로 세계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면 더욱 가열될 기미가 없지 않음으로써 수요면에서 파동을 주도할 공산이 크다.
공급면에서의 사정도 그다지 밝지는 못하다. 단합의 이점과 기술을 충분히 터득한 생산국들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한정된 자원을 싼값으로 내놓지 않으려는 결의에 차 있다. 이 같은 결의는 태반이 개발도상국인 생산국들의 정치적 이념과 결부되고 있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제 남은 길은 OPEC식의 대결이냐, 아니면 새로운 자원거래「룰」에 의한 호혜적 협조냐의 선택뿐인 것 같다.
지난 연초까지만 해도 자원국에 대해 강력한 자세를 견지해온 미국이 여타 선진공업국, 특히 구주제국과의 의견 차이를 좁혀 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의 직접 계기는 물론 구주와 제3세계간의 이른바 「로메」 협정이겠으나, 남북의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새로운 관계정립은 그 정치적 함축에 비해 경제적 실익이 더욱 클 것은 물론이다.
UNCTAD나 OECD를 중심으로한 선후진국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움직임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부와 자원의 일방적인 지배관계를 탈피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주로 선진부국의 절제와 유보로 가능할 것이다. 반면 같은 개발도상국이면서도 자원이 부족한 우리는 자원생산·소비국간의 이해조정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 사각지대로 남게될 것이므로 개발수입 체제의 강화나 생산국과의 개별 「루트」를 확보하는데 힘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EC와 ACP국간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품목별 가격협정의 체결이나 역내국가와 공동으로 수출안정화 기금을 설치하는 문제도 마련될 수 있으나 이는 국제금융 기구의 협조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에 관한한 자원문제는 여전히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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