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계획으로 철거될 전형적 이조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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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도심에 있는 유서 깊은 고가가 먼지와 매연 속에 찌들어 가고 도시 재개발 계획에 따라 가까운 시일 안에 철거될 위험 속에 놓여있다.
이 고가는 중구 장교동 63의 1 「빌딩」과 음식점·대폿집 사이에 있는 약 1백50년 전에 지은 우리 나라 고유의 전형적 기와집 (현 주인 박효종씨·38). 대지 4백30평에 건평 1백20평의 고색 창연한 이 집은 한말의 참정 대신을 지냈던 한규설 대감 일가가 1930년까지 약 80년간을 거처했던 곳.
한 대감은 한·일 합방이 되자 이 집에서 두문불출, 30년에 홧병으로 타계했다. 한 대감이 살던 당시에는 약 1천평 가량의 대저택이었으나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씩 팔려나가고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집 주위를 둘러싼 광이 일부 남아 있을 뿐.
이 집은 원래 이조의 전형적인 대갓집으로 이조의 건축 방식을 고루 갖춘 집으로 우람한 대문과 우아하게 빠진 처마 끝의 선·기와 등은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방은 모두 11개. 옛날 행랑채가 있던 자리에는 3층 건물과 구멍가게가 들어서고 아래채에는 인쇄소가 자리잡았으며 정원에 무성하던 고목들도 반 이상 없어졌다.
집주인 박씨는『집을 원형대로 보존하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경비가 많이 들어 뜻대로 안되는군요. 지금 형편으로는 재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팔아서 교외에 옮기는 등 원형 보존을 시키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71년 9월부터 이듬해인 72년 말까지 안채 (60여평)에 「대감댁」이라는 곰탕 집을 낸 일도 있어 나이 지긋한 층과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유서 깊은 집을 음식점으로 더럽힌다는 뜻 있는 사람의 비난과 경영난으로 「대감댁」은 1년4개월만에 문을 닫았다고 박씨는 말했다. <김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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