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노인을 경로당에 가두지 마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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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호 31면

영화 ‘수상한 그녀’의 기세가 심상찮다. 설 연휴가 낀 개봉 2주차에 누적관객 수 270만 명을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 이 영화는 만만한 가족물이 아니다. 요양원으로 쫓겨날 처지가 된 70대 할머니(나문희)가 영정 사진을 찍으러 우연히 사진관에 갔다가 스물한 살 처녀(심은경)로 몸이 바뀌는 마법에 걸린다. 그날로 ‘오말순’에서 ‘오두리’로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꿈이던 가수에 도전한다. 꽃미남(이진욱) 청년을 만나 설렘도 느낀다. 젊어서 펴지 못한 끼를 모두 발산하는 그에게 아들(성동일)은 “부디 지금처럼, 이대로 살라”고 한다. 2014년을 사는 게 신나는 1940년생이 자신의 한을 풀어가는 스토리다.

이 영화, 지금의 우리 현실을 생각하게 하지 않나. ‘오말순’ 여사처럼 “내 인생 돌리 도!”를 외치는 70~80대가 넘친다. 그 연령대가 총인구의 14%에 가까워졌다. 숫자만으로도 고령사회가 코앞이다. 1930년생, 올해 84세로 전북 익산에서 홀로 평범하게 사는 곽점례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20대 땐 전쟁 때문에 배를 곯았고, 30대엔 아이 여섯을 키웠다. 60세가 되니 세상이 빠르게 변해 적응하느라 힘겨웠다. 이제 좀 살 만해지니 이도 안 좋고 속도 예전만 못해 이 맛난 것들을 바라만 본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요동을 온몸으로 겪었지만 정작 이렇게나 좋아진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곽 할머니의 한이다. 주로 노인대학에서 꽃꽂이나 시를 배우는 곽 할머니에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따로 있다. 스무 살 먹은 손주와 영화 구경을 가고 노래방에서 요즘 노래를 들을 때라 한다.

‘실버정책’이니 ‘고령화대책’이니 하며 나오는 것들을 보면 정작 우리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원하는 게 빠져 있는 듯하다. 이제는 세상을 즐기고 싶은 이 시대 평범한 노인들의 로맨스 말이다. 로맨스는 뭐 특별한 게 아니다. 노인을 노인끼리만 몰아 놓지 않고, 젊은 세대와 함께 호흡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선 노인들이 열린 공간에서 이 사회를 실컷 맛보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뜻하고 포근할지언정 노인만 모여 있는 경로당으로 모실 게 아니라는 얘기다. 독일에선 최근 젊은 세대와 노인이 공생하고 소통하도록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가족연대’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반기는 어르신은 없다. 하지만 국내 실버정책은 여전히 그들만의 센터를 짓고, 그들만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실버’나 ‘고령화’로 프레임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정책을 설계하니 당연히 그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정녕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나.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에서 불명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박사는 “고령화시대의 키(key)는 세대 간 소통이 제대로 되는지 여부에 있다”고 말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라면 어르신께 도시락만 가져다드릴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품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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