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완화와 자유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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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8일부터 「제네바」에서 막을 연 제2단계 구주안보협력회의는 하나의 중대한 시련의 고비를 맞고있는 것 같다.
외신에 의하면 미국을 선두로 한 서방 국가들은 이번 「제네바」회의에서「유럽」안보의 전제조건으로서 동서간의 인간적 접촉을 위한「통행정보 및 유통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토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굳히고 있다. 만일 이 같은 문제에 대해서 이번 회의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하지 못할 경우 서방국가들은 내년「헬싱키」에서 열릴 제3·제4단계의 정상급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조차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된 바와 같이「제네바」회의에 임한 서방국가들의 태도가 이처럼 경화한 배경에는 제1단계 「헬싱키」회의 이후 소련이 국내의 반체제 지식인들에 대한 박해를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인 탄압에 대하여 세계의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깔려있다.
한편에선 소련의 양심과 양식을 대변하는 문학자「솔제니친」, 과학자「사하로프」등이 자유로운 생존과 발언조차 금압 당하고 있는 지금, 다른 한편에선 그들을 박해하고 있는 체제의 대표자와 「유럽」의 안보, 그리고 특히「협력」을 토의한다는 것은 적어도 자유와 인권을 기본신조로 하는 서방국가 지도자들로선 도저히 승복하기 어려운 도의적인 「딜레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서방국가들이 「솔제니친」「사하로프」를 비롯한 양심적 소련지식인들의 강압과 박해를 그대로 묵과하고, 계속 소련 정부지도자들과 구주의 안보 및 협력을 논의한다면 그것은 서방측의 심대한 도의적 패배로 지탄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서방측은 동서간의 「국제적」긴장완화에 의해서 소련 및 동구제국의「국내적」탄압 정풍을 도운 곁과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동서안보가 동구제국의 독재적인 정권안보의 길을 탄탄히 해주는 결과에 그치고 만다는 얘기이다.
바로 그와 같은 우려가 제1단계「헬싱키」회의에 참석한 서방국가대표들로 하여금 동서진영의 역사적 해후가 되는 이 회의를 당초 소련이 주장한대로의 구주 「안보」만이 아닌, 구주의「협력」을 또한 논의하는 회의로 명명케 한 근본동기였던 것이다.
무릇 국가간의 협력이란 오늘날 정부 대 정부의 차원에서만은 결코 실효를 거들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경제·과학·기술 등 20세기 후반기의 세계문명이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필연적인 요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참된 국제협력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부대표만이 아닌 과학자·기술자·경제인·예술가 등의 활발한 교류와 접촉을 그 전제로 한다. 이 같은 민간수준에 있어서의 사람과 사람의 자유로운 교류와 접촉은 군사적인 안보와 마찬가지로 긴장완화를 위한 「등가한 요인」이라는 것이 서방측의 신조가 되고 있다.
그를 위해서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사람의 교류와 정보유통의 자유화를 보장하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결국 국제적인 긴장완화는 국내적인 긴장완화를 아울러 가져올 때 참된 것, 완전한 것, 그리고 떳떳한 것이 된다는 뜻도 될 것이다. 우리는 구주안보협력회의에 임하는 서방측이 그 기본입장으로서 이 점을 확인하고 의연한 자세를 가졌다는데 대해서 큰 고무를 느낀다. 다만 도의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이 같은 서방측의 입장이 이번 「제네바」회의에서 과연 어느 만큼 관철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리 역시 착잡한 심정으로 그 곁과를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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