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경제심리 안정이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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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생산 위축, 경상수지 적자, 가계 부채 과다, 인플레와 실업의 증가 추세가 특징적 현상이다.

비록 수출 증가가 성장을 떠받치고는 있으나 내수 증가세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국민의 체감경기는 성장률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이라크 전쟁과 북핵 문제로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 경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져 가고, 이에 따라 주식시장도 활기를 잃고 있다. 경제 주체들의 소비와 투자에 대한 '기대심리'도 높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 지표경기 밑도는 체감경기

'경제는 심리다'란 주장이 있다. 경제행위는 감성보다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는 전통적 경제 분석에서는 심리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

그러나 '합리적 선택'이란 개념도 소비 욕구 충족과 같은 경제적 동기를 성취하기 위한 의사 결정 과정을 의미하기에 심리적 요인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한편 경제 정보는 시차를 두고 수집되기에 현 상황에 대해 누구나 완전한 정보를 갖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선택은 오로지 현상이라고 인지되는 상황을 바탕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심리요인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전망에는 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된다.

현상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정책에 대한 신뢰 구축이 경제심리 안정의 전제 조건이다. 당면하고 있는 대표적 경제 이슈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역조건의 악화로 생산한 것에 비해 소득이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가격 하락 등에 기인한 수출단가의 하락과 유가 상승 등에 따른 수입단가의 상승으로 경제적 이득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수 둔화와 더불어 국민의 체감경기가 지표경기에 비해 낮아지고 있는 중요 요인이다.

둘째, 경제성장이 정보통신 등 특정 부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성장부문과 여타 부문 간 괴리가 더욱 커지고 있으며, 대외 여건 변화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증대하는 구조적 취약점이 심화하고 있다.

셋째,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대외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다. 이라크 전쟁과 북핵 문제 등의 불확실성이 사라져야 외국인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다.

넷째, 유가 급등과 더불어 10%대의 높은 임금 상승률은 수출 가격 경쟁력 약화와 인플레 압력으로 작용할 위험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다섯째, 인구증가율 감소.저축률 하락.고령화 추세로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 경제의 활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이 정책 당국자의 애로점이다. 반도체 가격 하락과 유가 급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교역 조건의 악화를 방지할 수 없으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는 한 소득증가율은 생산증가율보다 낮게 나타날 것이다.

한편 교역조건이 악화되는데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내수를 확대하고자 한다면, 소비 증가에 따른 저축 감소와 경상수지 적자 증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현재로서는 재정의 조기 집행으로 경기 침체의 심화를 방지하는 한편 기업 환경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을 국제 규범에 맞춰 의연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을 대내외에 다시금 천명함으로써 투자자의 불안심리를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긍정적 기대심리를 부추기기 위해 달성이 어려운 성장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정부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게 되거나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

*** 경제 국제화 지속적 추진을

영국의 처칠은 총리로 취임하면서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는 대신 국민에게 "피와 투쟁과 눈물과 땀"을 요구했고 이는 진정한 리더십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 문제 해결에 만병통치약적 대응책은 없다. 국민도 조급하게 대응책을 요구해선 안된다. 정책이 실기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책 당국자는 정책의 부정적 효과는 작게, 긍정적 효과는 크게 보는 경향을 갖게 된다.

지금은 구조개혁과 경제 국제화에 정책의 취우선 순위가 매겨져 있다는 것을 경제 정책 담당자들이 국내외 경제 주체들에게 확신시켜줌으로써 경제 심리의 안정을 도모해야 할 때다.

김중수 KDI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