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겨울올림픽 D-100] 여자컬링 금빛 꿈 … 느낌이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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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여자 컬링 대표팀. 지원 부족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했던 여자 컬링은 겨울올림픽에서 팀 코리아의 효자 종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앙포토]

2014 소치 겨울올림픽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2월 8일 오전 1시14분(현지 시간은 2014를 뜻하는 20시14분), 러시아 휴양도시 소치의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릴 개막식을 시작으로 17일간 눈과 얼음의 축제를 펼친다. 지난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금 6, 은 6, 동 2개로 세계 5위를 차지한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도 피겨 여제 김연아(23), 빙상 여왕 이상화(24) 등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깜짝 메달을 꿈꾸고 있는 새로운 종목도 있다. 볼링·양궁·체스를 섞어놓은 듯한 컬링이다.

 컬링은 팀워크가 중요해 국내 최강 경기도청이 한국을 대표해 출전한다. 경기도청의 김지선(26·주장)·신미성(35)·이슬비(25)·김은지(23)·엄민지(22)가 기적을 꿈꾸는 5총사다. 지난해 12월 합류한 엄민지를 제외한 네 선수는 지난해 3월 캐나다 세계선수권 4강의 주역들이다. 일찌감치 올림픽 출전을 확정한 이들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버넌에서 5주째 전지훈련을 하고 있다.

 약 20㎏의 스톤을 빙판에서 밀어 표적 중앙에 더 가까이, 더 많이 붙인 팀이 승리한다. 스톤을 정확히 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판에 말을 옮기듯 전략적인 요충지를 선점하는 머리싸움이 중요해 ‘빙판의 체스’라고 불린다. 브룸(빗자루 모양의 솔)으로 얼음을 닦으면서 움직이는 스톤의 속도와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머리 좋고, 손놀림이 예민한 한국이 세계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큰 종목이다.

 KB국민은행과 신세계 등이 지원하면서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이들은 열악한 환경과 먼저 싸웠다. 김지선은 “국제대회 때 다른 나라 선수들이 쓰다가 버린 브러시 헤드를 주워 빨아서 다시 썼다. 그만큼 장비가 귀했다”고 말했다. 신미성은 “청소부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2008년에는 팀이 공중분해될 위기도 있었다. 김은지는 학비를 낼 돈이 없어 선수 생활 포기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슬비는 2008년 말 “돈을 벌어 대학에 가겠다”며 경북 구미로 내려가 유치원 보조교사를 했다. 김지선도 미래가 불투명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경기도청을 이끌던 정영섭(56) 감독의 설득으로 이들은 2009년 다시 스톤에 꿈을 실었다. 모텔에서 자고 김밥을 먹으며 3년간 맹훈련을 거듭한 끝에 세계 4강이라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후 대접이 달라졌다. 국제대회 초청도 이어졌고 기업체 후원도 받게 됐다. 지난달 초청받아 출전한 중국 오픈에서는 강호 중국·캐나다를 꺾고 우승했다. 정 감독은 “이제 누구도 한국 컬링을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높아진 위상만큼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맹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림픽 금을 향해 이들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지난 2월 딸을 출산한 신미성은 한 달 만에 빙판으로 돌아왔다. 지난 5월 중국 컬링 남자 대표팀의 쉬야오밍과 결혼한 김지선은 깨소금 같은 신혼 생활을 잠시 유보했다. 김지선은 “후회 없이 훈련하면 결과는 하늘이 답해줄 것이다. 그 결과가 금메달이었으면 좋겠다.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팅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고 싶다”고 했다. 잠시 컬링을 포기했던 이슬비의 각오는 더 다부졌다. “주변에서 빗자루질, 구슬치기하느냐고 놀림받을 때 서러웠다. 그동안의 설움은 잊고, 얼음 위에서 죽어보겠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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