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통진당 판결 … 법 안정성도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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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통합진보당이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이 통진당 대리투표 재판에서 최모(48)씨 등 45명에 대해 전원 무죄 판결을 내리자 내건 것이다. 당시 판결은 같은 사안에 대한 각 지방법원의 12차례 판결 중 첫 무죄 선고였다. [박종근 기자]

똑같은 사안을 놓고 법원 판결이 오락가락이다. 통합진보당 대리투표 재판 얘기다. 줄줄이 유죄가 선고되다가 지난 7일 처음 무죄 판결이 내려지더니 이번엔 다시 유죄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만에 법원 판결이 엇갈렸다. 법의 안정성과 판결의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광주지법 형사2단독 전우진(39) 부장판사는 16일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치른 통진당 당내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서 대리투표를 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주모(31)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또 주씨에게 대리투표를 위임한 반모(32)씨 등 3명에게는 벌금 각 3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에 명시된 직접·비밀·평등·보통의 4대 공직 선거원칙은 근대 선거제도의 근본 원리여서 당내 경선에서도 이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당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상 정당 활동의 자유와 정당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한 뒤 “그러나 정당의 활동이 법질서를 침해하는 행위라면 국가의 형벌권이 행사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이 같은 혐의로 기소된 최모(48)씨 등 4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과 180도 다른 판결이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당내 경선에 공직선거 4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상당한 규모의 조직적 대리투표가 아니어서 도덕적 비난과는 별개로 형사책임을 묻기는 힘들다”고도 했다. <중앙일보 10월 8일자 12면

 16일 유죄 판결에 대해 광주지법 한지형(36) 공보판사는 “이번 재판부는 지난 7월 같은 혐의로 기소된 윤모(48)씨 등 2명에게 벌금형을 내렸던 곳”이라며 “당시와 같은 기준과 판단에 따라 선고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진당 대리투표 판결이 엇갈리는 데 대해 법조계에서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 남부지검 검사장을 지낸 고영주(64) 변호사는 “판사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판결을 해야 한다”며 “그랬다면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안을 통해 사법부의 문제가 드러나고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신현윤(58) 법학전문대학원장(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 성향에 따라 같은 사실을 놓고 일부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것이어서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이념에 바탕한 판결로 인해 사법부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침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법부가 신뢰를 얻으려면 이런 극단적인 판결이 나오는 이유와 해소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57) 전 서울지방변호사협회장은 “1심에서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은 명확한 법규정이나 대법원 판례가 없기 때문”이라며 “통진당 대리투표에 대한 항소심과 대법원 결정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통진당 대리투표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대검찰청 공안부가 총 510명을 기소했다. 투표가 전국에서 이뤄져 재판은 각 지역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6일 광주지법까지 모두 13건의 선고 중 12건이 유죄였고, 무죄는 서울중앙지법 하나뿐이다. 당시 무죄 선고가 나오자 통진당은 서울 혜화동 대학로 등 전국 곳곳에 ‘비례경선 재판 전원 무죄! 마침내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근거 없는 야당 탄압과 정치 공작 끝내겠습니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환영했다.

광주=최경호 기자, 박민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광주지법 통진당 대리투표 유죄
"4대 선거원칙, 당내 경선도 적용"
7일 서울지법선 “적용 못 해” 무죄
법조계 "국민 상식 맞는 판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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