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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세월, 한·미 동맹 6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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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강일구]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레몬이 시다면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먹어라’는 미국 격언이 있다. 이 말은 나쁜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좋은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해보라는 의미다. 예컨대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비싼 가격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고 불평이나 늘어놓는 것보다 회사 차원에서 신 레몬을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바꾸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 훨씬 낫다. 즉, 높은 에너지 가격을 에너지 효율이 더욱 높은 생산라인을 새로 만드는 계기로 활용하는 것이다.

 대학의 사례를 보자. 행정 부서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학위과정을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대신 연방 수업 보조금 지원이나 신청하라고 했다. 그래서 연방 재정지원을 신청했는데 알고 보니 거기에는 보조금을 받으면 새로운 학위과정을 개설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꿩 먹고 알 먹듯이 보조금과 새로운 학위 과정을 함께 얻어낼 수 있었다.

 정부의 사례도 있다. 공직자들은 예상할 수 없고, 의기소침해지는 업무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1994년 미국은 핵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첫 단계가 될 수 있으므로 영변 원자로에서 폐연료를 제거하지 말도록 북한에 요구했다.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원자로에서 폐연료봉을 제거하는 작업에 즉각 들어갔다.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에 대한 군사공격을 한창 검토하던 와중에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사태에 개입해 클린턴 행정부 수뇌부를 제쳐놓고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협상을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격노했지만 앨 고어 부통령은 그때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궁리를 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카터가 제안했던 것과 같은 조건을 북한에 제시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은 보상을 받는 대가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가격을 올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1994년 북·미 기본합의로 이어졌다.

 신 레몬으로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낸 사례는 한·미 동맹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올해로 60주년, 즉 환갑을 맞은 한·미 동맹은 그동안 수많은 찬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을 의견을 하나 말하고자 한다. “한·미 동맹은 나쁜 재료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전형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45년 미국이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즉, 가능하면 빨리 빠져나가는 것뿐이었다. 미국은 마지못해 3년간 군정을 시행한 뒤 철수했으며 50년 북한이 남침하는 바람에 다시 한반도로 돌아갔을 뿐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이 공산주의에 대항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가진 동맹국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두 나라 사이에 군사협력은 기대 이상으로 확대됐다. 오늘날 한반도에서 양국 군대의 상호운영 효율성은 미군이 전 세계에서 유지하는 그 어떤 것보다 좋은 편이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돕지만 한국은 지금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은 물론 전 세계 곳곳에서 평화유지군을 운영하며 미국을 돕고 있다.

 1950~60년대 한국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거의 없는, 가난하고 퇴보하는 경제를 가진 나라로 간주됐다. 미국의 개발 전문가들은 남한의 경제는 농업과 경공업 국가 수준에서 더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평화봉사단들은 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개발을 돕기 위해 한국에 도착했다.

하지만 6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수준 높은 산업 경제는 그 모든 예상들을 뛰어넘었다. 지금 삼성전자는 일본 전자회사 5~6개를 합친 것보다 순자산이 더 많다. 게다가 한국은 현대사에서 개발원조 대상 국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원조 공여국이 된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또 미국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둘째로 큰 해외원조 조직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신 레몬을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바꾼 대표적인 경우가 한국인 것이다.

 60~70년대 미국 대사관의 젊은 관료들은 당시 한국을 통치했던 군사독재에 환멸을 느꼈다. 그들은 반공 동맹국이 인권에 가한 타격을 보며 실망했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이 90년대에 (좀 더 고위직으로서) 다시 한국에 돌아와 정치사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평화로운 민주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한국은 지금 수많은 신생국이 가입을 열망하는 민주주의 클럽(민주주의를 이룩한 국가들)의 대표적인 본보기 중 하나다.

 미국인들과 한국인들은 그동안 능수능란하게 수많은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어 왔지만, 아직 통일이라는 미래의 가장 큰 도전을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지난 60년 동안의 관계사를 볼 때 나는 두 나라가 신 레몬을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잘 변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신비로운 능력은 이달 17일 서울에서 열릴 한·미 동맹 60주년 축하행사에서 내가 관여하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토론할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주한 미국대사관과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함께 개최할 이번 행사에서 한·미 동맹 이후 서울과 워싱턴에서 근무했던 전직 대사들과 함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이야기하며 미래를 전망할 것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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