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금융위기 예의 주시 동유럽으로 번지진 않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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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흥국 위기가 동유럽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 수마 차크라바티(54·사진) 유럽개발부흥은행(EBRD) 총재의 전망이다. EBRD 회원국인 한국과 협력관계를 넓히기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지난달 30일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동유럽 국가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들 나라는 유로존(유로화 사용권)과 무역·금융으로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완전한 회복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유로존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우리는 동유럽 지역에 계속 투자할 예정”이라고 했다.

 -신흥국 외환위기 조짐이 왜 나타나고 있는가.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다. 간단하게 얘기하긴 어렵다. 다만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문제다. 미국의 양적완화(QE) 시기에 브라질과 멕시코로 너무 많은 외화 자금이 들어갔다. 위기 조짐을 보이는 나라들 가운데 터키만이 EBRD 회원국이다. 하지만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세계를 덮친 2008년에도 전체 투자 규모가 50억 유로(약 7조3500억원)였다. 이후 규모가 계속 늘어나 지난해엔 90억 유로에 이르렀다.”

 -프랑스와 독일이 번갈아 하던 총재직을 영국인으로는 처음 맡았다. 특히 아시아계 영국인으로선 말이다.

 “5세 때 인도에서 영국으로 건너갔다.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난 EBRD 총재일 뿐 영국을 대변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총재로 선출된 데는 아시아계로서 기대되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란 점을 부정하지 않겠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말이다. 유럽 경제위기를 거치며 아시아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

 -EBRD는 이름 탓인지 유럽에만 투자한다는 오해를 곧잘 받는다.

 “EBRD는 터키 등 성장잠재력이 큰 국가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SK가 참여한 터키 유라시아 터널 건설사업이 대표적이다. LG가 참여한 러시아 플랜트 건설사업도 매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는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카자흐스탄·몽골 등 중앙아시아에서도 지원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한국과의 협력도 확대할 계획인가.

 “EBRD는 이들 지역에서 경쟁력 높은 한국 기업과 함께 사업을 추진하길 고대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한국정책금융공사와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에서 상당한 금액의 기술협력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점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시리아 사태로 중동 지역의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시리아는 EBRD 회원국이 아니지만 주변국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EBRD 회원국 중 하나인 요르단에 수십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유입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금과 인력 지원 등 한정돼 있다. 하지만 난민 때문에 요르단의 공공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유럽개발부흥은행(EBRD)=1991년 출범한 국제기구다. 64개국과 유럽연합(EU), EU의 정책금융회사인 유럽투자은행(EIB)이 회원이다. 한국은 EBRD가 세워질 때부터 회원국으로 참여했다. 소련 해체 이후 동유럽 공산권 국가가 시장경제체제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다. 아시아와 중동·중남미로 지원영역을 넓히고 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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