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正常국가로 갈 좋은 기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권력이란 상대방에 대한 지배력이다. 상대방의 의지를 꺾고 나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힘이다. 국가권력은 이러한 힘에 합법적 폭력을 인정해 그것을 관철할 수 있는 힘을 극대화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런 국가권력은 그 행사에 따라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하다.

*** 권력 사유화로 빚어진 피해

국가권력을 이렇게 강대하게 해놓은 것은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억제하면서, 동시에 이런 힘을 가지고 국리민복과 국가의 존속과 번영을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권력은 철저하게 공적인 것으로 해놓아 어느 누구도 사적으로 장악하지 못하고, 국가만 독점적으로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공직자만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공적인 룰에 의해 이를 행사하게 해놓았다. 이는 국가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절대적인 금지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타인에 대한 지배의 욕구로 인하여 끊임없이 권력에 접근하지만, 권력에의 접근과 파멸로의 접근은 매우 가까이 있다. 그래서 국가권력에 대해 대체로 '권력 탐닉' '권력 운용''권력 비판'으로 나누어보면, 그 그림이 보다 분명해진다.

'권력 탐닉'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공권력을 이용해 남을 지배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독재나 권위주의 통치가 이에 해당하고, 현재까지 역대 정부는 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의 실패와 그로 인한 국가와 국민이 입은 막대한 피해도 권력의 사유화로 빚어진 것이다. '권력 운용'은 사심을 버리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정해진 규칙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며 나라에 봉사하는 것이다.

입헌민주국가의 정상국가(正常國家)에서 있는 권력작동 방식이다. '권력 비판'은 국가권력이 원래의 기능을 하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대체로 지식인, 언론, 시민단체의 몫이다.

이제 새로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에서는 종래 권력 감시에 열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다. 그리고 대통령에서부터 그를 보좌하는 팀에 이르기까지 법률가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국정에 참여한다.

본인들이 인식하는지는 몰라도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잘만 하면 우리 나라도 권력이 법에 의해 통제되는, 민주법치국가의 정상국가로 갈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만 잡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고, 공권력을 한껏 악용해 자기들만의 배만 채우곤 하던,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종래의 추잡한 권력놀음을 일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권력의 정상적인 운용에는 제도도 필요하다. 제도만 놓고 보면, 그간의 민주화의 열망에 따라 선진국의 80% 정도까지는 와있다고 본다.

계속 제도개혁도 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권력 탐닉'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권력 운용'을 하는 것이다.

'권력 감시'때의 초심을 그대로 가지되, 국익과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국가운영'의 현실적 메커니즘을 터득해 단심(丹心)으로 일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검찰의 개혁도 그 비중은 천지개벽을 하는 제도개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람으로 검찰총장을 앉히고 검찰을 정권 유지의 목적으로 이용해 온 잘못된 관행을 없애고, 검찰기능에 가장 합당한 정의의 검사들을 중용하고 이들의 애국심이 빛이 나게 인사를 하는 데 주어진다.

국익과 국가안전에 매우 중요한 국가정보기관도 정권의 심복들로 채우지 말고, 애국심과 전문성을 갖춘 실력있는 사람들을 등용하고 양성하면 된다.

특히 정치적 중립이 필요한 검찰.국가정보기관 등은 대통령과 권력핵심세력의 권력남용까지도 감시해야 하므로, 기꺼이 이런 감시를 받는다는 마음에서 운용하면 법치민주국가로 갈 수 있다.

*** 중요해진 지식인·언론 역할

불법국가가 아닌 이상, 지식인과 언론이 정부와 정면 대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란 권력 탐닉의 유혹에 빨려들 위험에 언제나 노출돼 있으므로 권력에 대한 감시는 언제나 필요하다.

지식인과 언론이 언제나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권력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제대로 된 나라를 한번 만들어 볼 때가 됐다고 본다.

鄭宗燮(서울대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