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건강한 한미 동맹 위한 제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최근 노무현 당선자 대미사절단의 활동을 둘러싸고 많은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저간의 사정이 어찌되었든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런 심정이다. 그래서 사절단을 기획했고 동행했던 사람으로서 한마디쯤 해명을 해드리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절단 北核발언은 크게 보도

먼저 盧당선자를 보좌하는 인수위원회는 아직 정권을 인계받은 주체가 아니다. 취임식 직전까지 모든 외교 현안의 구체적 해결권한은 현 정부에 있다.

따라서 사절단의 목표도 당선자의 면모와 정책방향의 소개, 한.미 동맹의 강화 및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입장 전달로 한정했다. 그래서 협상 전문가보다는 당선자의 의중을 정확하게 알고 전달할 수 있는 비중있는 정치지도자를 파견하게 되었다.

워싱턴에서는 이틀 동안 총 13개의 모임.회견.행사에 참석했다. 대통령을 제외한 행정부 및 의회의 모든 핵심 정책결정자들을 만났고 그들과의 대화는 순탄하게 진행되었으며 위의 세 가지 목표는 비교적 만족스러울 정도로 달성됐다고 생각된다. 양국 정부의 좀더 집중적인 협의 채널을 만들어보자는 합의도 그러한 진지한 논의의 산물이었다.

이들 정부의 공식 인사들과의 대화는 정대철 수석대표가 주도했고 의전상의 결례는 없었다. 물론 대화 내용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고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정부 인사들이 아닌 한반도 민간 전문가들과의 자유스런 의견교환을 위한 비공개 토론모임이었다. 이 모임에서 필자는 북의 핵 보유는 어떻게든 막아야 되지만 그 과정에서 1994년처럼 전쟁 발발의 위험성은 피해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을 가감없이 전달하고자 했다.

실제로 북한과 같은 악한 정권은 붕괴시켜야 한다고 믿는 미국 사람들이 있기에 그러한 사태가 한반도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북의 핵무장이냐 붕괴냐 하는 미국측 인사의 의도성 있는 질문도 여기서 나왔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북의 붕괴가 전쟁을 수반할 것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필자는 발언했다.

그런데 이것이 그 자리에 참석한 어느 대북 강경론자에 의해 필자 자신의 견해로 언론에 공개되었고 여과없이 한국 언론에 의해 증폭 보도됐다.

다분히 고의성이 있는 질문이 나왔을 때 필자는 세련된 외교적 수사보다는 아마추어적일지 몰라도 정직한 발언이 우리 국익을 위해 필요한 때라고 판단했다.

한반도 무력충돌의 경우 발생할 피해가 미국 측보다는 한국 측에 훨씬 클 것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그러한 우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미국측 인사의 발언도 뒤따랐다.

워싱턴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지켜보아온 필자는 솔직히 세련된 프로페셔널 외교관과 전문가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할 말을 다하면서 우리 국익 추구를 해왔는지 반문하고 싶다.

*** 美의 한국 따돌리기 따졌어야

그랬더라면 어떻게 94년 봄엔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고, 과거 수십년간 네번에 걸친 미군철수 과정에서 한번도 통보조차 못 받았으며, 2001년 3월 한.미 정상회담은 어떻게 그렇게 재앙스런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언론보도를 보면서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우주비행선 사고로 국상을 치르고 있는 부시 대통령을 왜 못 만났느냐고 질책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바라기는 우리 언론이 국익과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들의 맥을 짚어줌으로써 국민과 정부를 계도해주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은 최근 우리 한국의 운명에 직결되는 발언, 즉 북한의 핵 포기 압박을 위해 어떤 수단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전에 왜 동맹국인 한국에 충분히 상의해오지 않는지를 따져 묻는 칼럼이나 사설은 과문한 탓인지 본 적이 없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은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러나 한.미 동맹 관계가 속으로 곪지 않고 건강해지려면 양국간에 의견의 차이가 있을 때 그것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확인한 다음 좁혀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윤영관(인수위 간사, 외교통일안보 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