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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중 공조, 성급한 '등 돌리기' 아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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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천안함 사건 직후의 일이다. 미국의 한 중국 전문가가 메일을 보내왔다. ‘중국의 대북 편향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천안함 사건 전까지 차이나 피버(중국 열기)에 휩싸여 있던 우리 여론이 차이나 배싱(중국 때리기)으로 돌변하고 있던 때였다.

 그때 그는 한국이 중국의 시간관(觀)에 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과거 지향적’인데 한국이 이것을 잘 모르고 있다는 얘기였다. 자기 앞에서 흘러 내려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태공의 모습이 바로 중국이라 했다. 이 강태공은 상류에서 무엇이 흘러오는가를 보기 위해 ‘등을 돌리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눈에 한국은 정반대였다. 하류로 흘러가는 강물에서 ‘등을 돌리지 않는’ 중국과 달랐다. 상류에서 무엇이 내려오는지를 보기 위해 ‘등을 돌리기’에 분주한 모습이 바로 한국이었다. 흐르는 강물을 계속 바라보는 태공이 아니라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승객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강태공은 그가 ‘알 수 있는 과거’에서 등을 돌려 그가 ‘알 수 없는 미래’로의 맹목적인 비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그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지적을 피부로 느낀 것은 얼마 후였다. 시진핑 주석이 국가 부주석 때의 일이다. 그가 말했다. 한국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대항하는 정의의 전쟁이었다’고. 그리고 ‘중국은 북한과 피로 맺어진 우정을 잊은 적이 없다’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이익을 뛰어넘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했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태공이 결코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시 주석의 시간관념에 조심스러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더 이상 강기슭에 앉아 과거를 즐기는 태공의 모습이 아니다. 미래로의 ‘위험스러울지도 모를’ 비행을 준비하는 자세다.

 지난주 시진핑 주석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깼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보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초청한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피로 맺어진 우정’의 과거보다 국가이익의 미래를 위해 등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 주석은 공동성명을 통해 ‘유관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데’ 박 대통령과 인식을 같이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자주적인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는 ‘한반도 통일 문제’를 그가 언급한 것 자체가 상당한 변화다. 그리고 ‘6자회담의 틀 내에서 각종 형태의 양자 및 다자 대화’를 ‘유관국들’에 요구하고 나섰다. 박근혜의 스마트 외교가 빛을 발한 결과다.

 하지만 북핵문제의 기본적인 인식에서는 큰 변화를 못 끌어냈다. 공동성명에서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의 비핵화’를 예전처럼 고집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북한을 배려하는 동시에 한·미 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사실 우리는 이번에 중국이 안보 우선순위에서 무핵(無核)을 부전(不戰)이나 불란(不亂)보다 앞세워 북한 핵에 대한 인식을 바꿀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 등을 돌릴지 주저하는 모습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관국들’에는 중국이 몰고 가려는 6자회담 비행기의 좌석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할지를 놓고 사방을 살펴야 할 판이다. 박근혜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박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를 동맹의 확고한 지지와 결합시켜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 한·미·일 공조체제로 갈지, 아니면 새로운 한·미·중 공조체제로 갈지 고민이 적지 않은 모습이다. 한·미·중 공조체제에 미국은 시큰둥하고 일본은 쇼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1972년 닉슨 방중 때와 유사한 더블 쇼크를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대통령이 일본에 앞서 중국을 방문하고, 한·미·중 공조에서 일본이 소외되는 이중의 쇼크를 느끼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훼방꾼(spoiler)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북핵문제의 인식에 관한 한 중국은 이제 등을 돌릴까 말까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한·미·중 공조는 아직 시기상조처럼 보인다. 한·미·일 공조에서 우리가 너무 성급히 등을 돌리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을 끌어들이는 박근혜의 스마트 외교가 한번 더 필요한 시점이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