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국민연금 차별, 내년 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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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다 전업주부가 된 뒤 다치거나 숨지더라도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전업주부가 아니라 미혼 또는 독신 상태에서 숨지면 가족에게 유족연금이, 다치면 본인이 장애연금을 받는다. 비슷한 조건인데도 전업주부라는 이유로 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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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차별이 조만간 없어지거나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열린 제16차 회의에서 이 같은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위원회 관계자는 1일 “보험료 납부 이력이 있는 전업주부의 차별을 개선하자는 데 모든 위원이 동의하고 있으며 이 같은 의견을 7월 중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보험료 인상 등의 안건은 의견이 엇갈리지만 전업주부 차별을 바로잡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위원회 권고안을 받아 세부 방안을 정리해 10월 국회에 보고하고 내년 초 법률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출산율·성장률 등을 감안해 5년마다 재정을 다시 따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올해가 그해이며 제도발전위원회가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위원회엔 재계·노동계 등의 추천을 받은 전문가 14명이 참여한다. 기초연금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와는 다른 기구다.

 대전시 정모(56·여)씨는 직장생활·식당일 등을 하며 9년 넘게 국민연금 보험료를 부었다. 그러다 2011년 말 지병으로 사망했다. 남편 김모(56·회사원)씨에게 유족연금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정씨가 숨지기 전에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고, 국민연금 혜택을 못 받는 적용제외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가 낸 보험료에다 이자를 얹어 714만원을 일시금으로 받은 게 전부다. 만약 정씨가 장애를 입었더라도 장애연금을 받지 못한다. 200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정씨처럼 연금 혜택을 못 본 전업주부 사망자가 2만5485명에 달한다. 연평균 5500명 정도가 이런 불이익을 당한다.

 게다가 잠재적으로 정씨와 같은 사각지대에 빠질 수 있는 전업주부가 약 540만 명에 달한다. 소득 있는 배우자가 있고 본인들은 연금보험료를 낸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본지 2012년 10월 23일자 1, 12, 13면> 이 중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0년이 넘은 사람만 58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유족연금은 혜택을 보지만 장애연금은 못 받는다. 10년 넘으면 국민연금을 받는 최소 가입기간을 채웠는데도 적용제외자가 돼 사각지대에 빠져 있는 것이다.

 반면 미혼·독신이거나 소득 있는 배우자가 없는 상태에서 보험료를 내다 실직하면 납부예외자가 돼 연금 혜택을 본다. 경기도 이천의 박모(30·여)씨는 보험료(약 10만원)를 한 번만 내고 실직한 상태에서 숨진 뒤 가족들이 월 20만원가량의 유족연금을 받는다.

 국민연금법이 바뀌면 전업주부 차별이 상당수 없어져 숨진 정씨의 경우 납부예외자 등으로 분류되고, 남편 김씨는 월 16만원가량의 유족연금을 받게 된다.

신성식 선임기자

◆적용제외자·납부예외자=국민연금 강제 적용을 받지 않는 사람이 적용제외자다. 18~27세 학생·군인, 연금가입자의 소득 없는 배우자(전업주부) 등이다. 연금법이 규정하는 전업주부에는 남자가 42%나 된다. 실직·사업실패 등으로 보험료를 내지 않도록 허용한 사람이 납부예외자다. 가입자 신분이어서 장애·유족연금 혜택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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