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반성문을 쓰고 있는 구리 9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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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결승 1국>
○·이세돌 9단 ●·구리 9단

제12보(143~158)=좌변 일대에서 발발했던 긴 전쟁이 백△에 이르러 일단락됐습니다. 누가 이긴 전쟁일까요. 백이 이겼습니다. 이 전쟁만 본다면 백은 잃은 것(26집)에 비해 얻은 것(약 40집)이 월등히 많습니다. 좌하 백은 흑이 손을 쓴다면 50%쯤 죽은 돌이었는데 그 점이 해소된 것도 계산서에 올려야 하고 중앙에 길게 뻗은 백 대마가 완생이 되며 그걸 바탕으로 중앙 흑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소득입니다.

 보통은 이런 정도면 바둑이 끝나야 옳겠지요. 이 판은 다릅니다. 우선 143이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또 백이 본시 꽤 불리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바둑은 이래서 다시 긴 승부가 됐습니다. 아직도 흑이 약간이나마 좋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파탄 직전까지 몰렸던 백의 입장에선 이 정도로도 지옥에서 부처님 만난 심정일 겁니다. 끝낼 수 있을 때 끝내지 못한 구리 9단은 반성문을 쓰고 있겠지요.

 144, 146으로 중앙을 공격하는 듯하다가 148, 150으로 변신합니다. 이세돌의 수들은 이처럼 정체불명일 때가 참 많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종반이 다가오며 ‘실리’에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지요. 구리 9단도 그걸 온몸으로 느끼며 실리에 방점을 찍은 강수를 던집니다. 157인데요, 이 수로 ‘참고도’ 흑1에 두면 온건하지만 백A의 붙임을 당하면 집으로는 남는 게 없겠지요. 그래도 157은 짜릿합니다. 158에서 바둑판은 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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