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크리스머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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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징글·벨」소리와 함께 시름이다가온다. 누구인가, 한국의 「크리스머스·이브」는 술타령,「박카스」의 축제라고일렀지만, 특히 명동의이날밤은 소란하고 난잡하기가 이를데없는 축제분위기 속에서 지새웠다. 명절때면 한층더 고달픈 일로 밤을새워야 하는 것이 우리경찰관들의 직책이기는하지만,「크리스머스」처럼, 일면고달프고 두려운 명절도 우리경찰관에겐 없었다. 작년에는 「크리스머스」를 가족과함께 보내기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인 탓인지 예년에비해 퍽 조용했지만, 그래도 우리 파출소에는 5장의 유리와 의자2개가 결딴이 났다.
이것 보란듯이 오줌을 누는가하면 제발로 파출소에 기어들어와서는 힁설수설 기염을 토한다. 말리면 더욱 기고만강-. 서장을 대라, 모가지를 떼겠다하며 무섭게 대어든다. 싸움이 벌어졌다, 기물을 부쉈다, 돈을 잃어 버렸다하는 쉴새없는 신고에도 일손이 모자라 머리가 돌지경인데, 주정뱅이의 시증까지 들자니 저절로 짜증과함께 신세타령이 퉈어나온다.
이렇게 하룻밤을 늘씬하게 시달리고나면 직원모두가 흡사 데쳐놓은 나물처럼 축 늘어져서 아무 생각조차 하기도 귀찮은 몹시 피근하고 우울한「크리스머스」아침을 맞게된다.「메리·크리스머스」-이것은 적어도 우리 경찰관에겐 천만의 말씀이다. 뿐아니라 아빠 얼굴을 보지못하는 우리 가족들에게도 「크리스머스」는 달갑잖은 존재다.
거리에는「징글·벨」의 경쾌한 음율과 함께 벌써 「크리스머스·무드」가 무르익고 있다. 그것은 무슨경종이나 되는것처럼 나의 고막을 시름스럽게 울려줄뿐이다. 지금 영동지방에서는 잔비소탕에군·관·민이한덩어리가 되어「크리스머스」를 모르고 싸우고 있다. 제발 이해의「크리스머스」는 국민 모두가 가족과함께 조용히 보내도록 모두가 자숙해주었으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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