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장마와 수돗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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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돈을 물쓰듯한다는 말이 있다. 약간 낭비 같아서 반감을 느끼게는 하지만 풍성풍성하고 시원함을 던져주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즈음 중부지방에는 집중호우까지 쏟아져 물난리까지 겪었지만 수도사정은 여전히 가난뱅이 돈 쓰듯 아껴써야 할 지경이다. 삼복더위에 답답하고 더럽고 목이 타는 얘기지만 그것이 발로 내게 닥친 현실이고 수도 서울의 실정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흙투성이가 되어 들어오는 막내둥이는 엄마가 얼마나 물음 아끼고 밤을 새워 받은 것인 줄을 알 리가 없다. 가끔 흙손을 물 속에 넣고 휘정거린다. 『엄마는 하루종일 물 밖에 몰라』-. 정말 어쩌다 나는 목마른 물귀신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밤이 깊어 첫잠이들 무렵 『식식퍼걱퍼걱』부업에서 소리가 난다. 나는 소스라쳐 달려가 수도꼭지를 더듬는다. 그 소리는 상오1시, 2시에 나도 반갑기만 한 소리다. 곤히 잠든 가족들의 잠이 깰세라 소리대지 않고 물 받기에 나는 다시 고심한다.
그러다가 독에 반도 차지 않아서 다시 수도꼭지는 『식식 퍼걱퍼걱』 소리를 내며 물줄기가 끊어진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50여명의 주부들이 물 때문에 아귀다툼을 하고 싸운 기사가 생각이 난다. 석달째 물이 안나와 한지게 30원씩 사먹는 친구는 물장수가 반쯤찬 간장 독에 물을 가득 채워두었더라고 울상이다. 그는 마치 못 먹게된 간장 보다 물 한지게 버린 것이 아깝다는 표정 같아 서글펐다.
고속도로도 고층건물도 좋고 제2경제니 근대화도 좋지만 이 더위에 물을 먼저 주었으면 좋겠다. 장구벌레나오고 지렁이가 섞어도 좋으니 수도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것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이정순<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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