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둥이와 민족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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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제48회 전국체전은 일부 선수끼리의 투석전. 집단폭행. 심판구타등 불상사로 소란하다. 머리에 타박상을 입은 선수들, 매를 맞고 기절한 사람, 몽둥이 찜질에 피투성이가된 심판관. 그런 경기장을 상상해 보면 푸른하늘 아래 눈부신 백색「유니폼」들이 무색해진다. 운동선수들이 유난히 백색계통의「유니폼」을 착용하는것은「스포츠」가 갖는 청량감. 신사도. 그「모럴」등의 상징일 것이다.
「유니폼」에 땀대신 증오와 시기와 저주의 감정이 배어 있을 때 얼마나 추하게 보이는가. 마찰은 결국 승부감정에서 생겼다. 무자격 부정선수가 개입한것도, 응원단의 열광이 눈에 거슬린것도 승패에만 집착한 때문이다. 승리한자가 기쁘고 패한자가 우울한 것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그러나 패한자가 언제나 흔쾌히 위로를 받을수 있는것은『최선을 다했다』는 그것이다. 참말 우울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 하지도 못하고 패한 자책감이다.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우울하고 불쾌한다면, 또한 그것이 불상사를 빚어낸 원인이라면 야만적인 사고방식이 아닐수없다. 패한자가 기쁠수도 있는 것이 바로 문화의 긍지이며「스포츠」가 주는 교훈이다. 심판관에게 몽둥이를 휘두른 것은 또 어떻게된 일인가. 선수들의「코치」는 무엇을 가르쳤는지 의심스럽다.
「볼」을 다루는 기술만 가르치고, 혹시「룰」은 잊어버리고 가르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원시미개사회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스포츠」가 다기다능하게 발전한것은「룰」이 있었기 때문이다.「룰」이 균형을 잃거나 무시되었다면「스포츠」는 2만년전 원시인의 암벽화속에나 남고 말았을 것이다.
전국체전이 단순히 지역적인 경쟁만을 고수하고 조장하는것도 문제다. 향토의 전통적인「스포츠」도없는 전국체전은 오히려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체전이 승리한「도」에 계관을 씌워주는 행사로 반복될 때 투석전과같은 원시적경기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훨씬 서민적이고 인정적인 향토경기등이 다채롭게 출연하는 민족애의 체전은 있을수 없는가. 관심을 가져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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