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화 어깃장 … 박근혜·오바마 약속한 듯 강경 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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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개성공단 쌀 전달 막아 북한이 17일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단의 방북 요청을 거부했다. 대표단은 공단에 남아 있는 주재원들에게 쌀과 생필품 등을 전달하고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었다. 방북 요청이 거절된 대표단이 경기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입구에서 이날 입경한 공단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차량에 실려 있는 물품이 이날 대표단이 공단으로 가져가려던 쌀과 생필품들이다. [강정현 기자]

5월 7일 정상회담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최근 대북 메시지가 조율을 한 듯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북한이 박 대통령과 존 케리 미 국방장관의 대화 제의에 대해 “아무 내용도 없는 빈껍데기”라고 반발하면서 남북 대치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두 정상의 메시지도 단호해지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은 17일 주한 외교사절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위협과 도발을 하면 또 협상과 지원을 하고, 위협과 도발이 있으면 또 협상과 지원을 하는 그런 악순환을 우리는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그런 메시지를 전할 때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서느냐, 아니면 고립으로 가느냐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의원들과 만나 “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북한이 대화 제의를 거부하고 개성공단을 잠정 폐쇄하면서였다. 박 대통령은 14일 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을 통해 “북한이 대화 제의를 거부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며 개성공단과 관련한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대화 제의를 거부하자 상당한 실망감을 표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원칙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대화 거부 이후 당당하게 대응하자는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통일부도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들의 방북을 불허하자 “입주 기업의 요청과 인도적 조치마저 거부한 것에 대해 매우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김형석 대변인)는 대응 논평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려면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방송된 NBC의 ‘투데이’ 프로그램에서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 그리고 다른 국가와 협상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은 열려 있다”면서도 “그러나 김정은과 전임자들(김일성·김정일)이 보여줬던 도발적 행동부터 먼저 바꿔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이어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기 전에 앞으로 몇 주간 더 도발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과거에 보인 변덕스러운 행동들로 볼 때 미국은 모든 긴급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은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나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고 북한의 지도자도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들이 취한 행동이나 그들이 내놓은 언사가 도발적이라는 점”이라며 “미국 행정부의 현재 정보 분석에 근거할 때 나는 북한이 핵탄두를 탄도 미사일에 얹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의 군사 위협이 수사(修辭)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인 셈이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도발에 대해선 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근 존 케리 국무장관이 한·중·일 순방 과정에서 보여준 유화적인 제스처 때문에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해법이 ‘선(先) 대화, 후(後) 비핵화 논의’로 바뀐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이를 오바마 대통령이 일축해 버리면서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대화나 협상도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셈이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신용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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