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미지근땐 총선 필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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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鄭雲燦)서울대 총장과 박세일(朴世逸)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는 모두 개혁총리 후보로 거명됐던 사람들이다. 이 둘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지식인 그룹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해 각별히 공을 들였던 대상이기도 하다.

총리 인선 취재 과정에서 만난 鄭총장과 朴교수는 "나는 총리감이 아니다"면서 盧당선자에 대한 고언(苦言)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자신이 총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 늦은 밤 자택 혹은 교수 연구실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솔직담백했다.

고건 전 총리의 내정 사실이 알려지기 전인 17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鄭총장은 "盧당선자가 1년을 무난히 끌고 가려고 하면 내년 총선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했다. 盧당선자의 안정 총리론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으로 해석됐다.

그는 "뜨뜻미지근한 개혁을 하면 반드시 진다. 개혁을 제대로 하면 이길 수도, 반대로 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자신은 "총장 임기를 채우겠다"고 여러차례 공언한 만큼 학교에 남겠다며 오히려 다른 사람을 총리 후보로 추천했다.

"보수층을 무마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이세중(李世中)변호사를, "모실 수만 있다면 아주 좋은 일"이라며 변형윤(邊衡尹)서울대 명예교수를 꼽았다.

반면 朴교수는 盧당선자에 대해 유연성을 주문했다. 그는 盧당선자 주변, 특히 인수위에 참여한 학자들의 인적 구성에 대해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 있다. 그리고 배타적"이라고 우려 섞인 평가를 했다.

그러면서 실례를 들었다.

"1월 초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국제정치학회에서 햇볕정책 얘기가 나왔다. 다른 학자들이 너무 햇볕정책에 무비판적이기에 북한의 인권 문제나,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 문제도 함께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랬더니 반대편에 섰던 교수들의 제자들이 인수위에서 나를 비판하더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인수위엔 그런 기류가 있었다.

朴교수는 "주변이 왼쪽이라도 대통령은 가운데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盧당선자의 '개혁 대통령, 안정 총리론'에 대해 朴교수는 "개혁을 위해선 공무원들이 변해야 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개혁을 강조해도 총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개혁의 목소리는 권력 상층부에서만 맴돌 뿐 공무원 조직으로 전파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무원 조직을 개혁으로 이끌기 위해선 '안정'보다 '개혁총리'가 바람직하다는 요지였다.

그는 "검찰.국회 등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은 과감하게, 경제.노동 부문에 대한 개혁은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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