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은행, 근저당 설정비 돌려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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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고객이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비를 은행에서 돌려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금까지 법원은 비슷한 소송에서 은행 손을 들어준 바 있어 상급심 판결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단독 엄상문 판사는 20일 장모씨가 “부당한 계약에 따라 부담한 근저당비를 돌려 달라”며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70여만원의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엄 판사는 “대출 계약서에 누가 근저당비를 부담할지에 대한 표시가 없어 양자 간에 실질적인 협상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약관이 무효이거나 약정 자체가 없는 경우에 해당해 담보권자인 은행이 근저당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엄 판사는 “은행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원고가 근저당비를 부담한 것으로 보인다”며 “비용을 원고가 부담케 한 것은 고객에게 불리한 약관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약관에 근저당비 부담 주체가 누구인지 표시가 전혀 되지 않은 사건에 대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은행 고객들이 국민은행·하나은행·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을 상대로 낸 유사 소송에서 모두 은행 측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은행 약관은 무조건적으로 고객에게 근저당비를 부담시키는 게 아니라 고객 선택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며 “고객이 자유 의지에 따라 계약했으므로 은행이 근저당비를 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전까지 비슷한 소송에서 고객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지난해 9월 인천지법 부천지원 판결이 유일하다. 당시 재판부는 이모씨가 신용협동조합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 소송에서 “외형상으론 고객에게 선택권을 줬지만 실제로는 대출 관련 부대비용을 고객에게 전가시키는 방법으로 운영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김기환 기자

◆근저당권 설정비=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발생하는 등록세·교육세·신청수수료 등 부대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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