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새정부 '내편' 아닌 '일' 중심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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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盧武鉉)정부의 초대 총리를 놓고 말이 많다. 盧당선자가 한번 '안정'하니까 고건(高建)씨 이름이 나오고, 당선자가 '개혁'하니까 다른 이름이 나온다. 당선자가 또 한번 '안정'하니 다시 高씨 이름이 나온다.

매스컴은 '안정' '개혁'을 마치 특정인의 별호(別號)처럼 쓰는 것 같다. 당선자 진영이 좋아하는 인터넷 여론에선 구시대 인사는 안된다며 개혁총리를 열망한다고 한다.

이런 논의를 보며 걱정스러운 것은 기계론적인 이분법(二分法)식 사고방식이다. 안정을 택하면 개혁을 못하고, 개혁을 하면 안정이 흔들릴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총리 후보도 안정과 개혁의 저울질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 안정·개혁 편가르기 없어야

그러나 이런 생각엔 허점이 있다. 우선 국가경영이 안정.개혁의 택일(擇一) 문제일 수도 없고,안정과 개혁을 대립관계로만 보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정해야 개혁이 되는 경우가 있고, 개혁해야 안정되는 경우도 있다.

개혁할 일이 산적한데 안정이 중요하답시고 개혁을 않는다면 결코 안정이 올 리가 없다. 반대로 개혁이 중요하답시고 아침.저녁으로 바꾸고 들쑤신다면 개혁의 개(改)자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안정과 개혁은 서로 대립적이기도 하고 보완적이기도 하다. 정권 담당자들로서는 당연히 안정도 하고 개혁도 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많은 경우 안정과 개혁은 속도문제다. 변화를 빨리 하면 개혁이요, 천천히 하면 안정이다.

물론 좌우 이념성향에 따라 변화속도나 폭은 다르겠지만 지금은 이념보다는 성과를 중시하는 탈(脫)이념으로 가는 세상이다. 이처럼 따지고 보면 양자 간에는 많은 경우 정도 차이일 뿐 본질 차이가 없다.

안정과 개혁을 이런 눈으로 본다면 정부에 기용할 사람을 안정형.개혁형 식으로 딱지를 붙이고 진보.보수, 좌.우 따위로 편을 가르는 일은 옳지 않다.

더구나 개혁형은 우리 편, 안정형은 남의 편으로 몰아 우리 편만 찾다보면 인재풀만 좁아지고 좋은 사람을 놓칠 위험성이 크다. 지금껏 DJ의 인재풀이 좁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필자가 보기에 盧당선자의 인재풀은 더 좁을 것 같다.

DJ는 호남인맥과 동교동계를 거느리고 오랜 정치활동으로 맺어진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도 갖고 있었다. 이에 비해 盧당선자는 거느리는 지역도, 계보도 없고 정치경력도 매우 짧다.

이런 그의 처지에서 내편.네편을 가르고 차별하다가는 자칫 골라 쓸 사람은 적어지고 좋은 정부를 구성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형(型)이 아니라 '일하는 능력'이다. 현대중국의 가장 위대한 개혁가는 덩샤오핑(鄧小平)이다. 鄧은 쥐를 잘 잡으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그는 꼭 '개혁 고양이'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문제는 국가경영을 가장 잘 할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지, 개혁형이냐 안정형이냐 하는 것이 아니다.

盧당선자는 분명 진보.개혁형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된다. 신세대와 신민족주의자들에게 빚을 졌으니 그 빚도 갚으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일'과 '능력'이란 두 가지 인선요소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진보파의 무능도 무능이요, 지지세력의 부패도 부패이긴 마찬가지다. 무능해도 내편이니까 쓰고, 유능해도 네편이니 배척한다면 애국심마저 의심받을 것이다.

*** 연습 대상이 아닌 국가경영

국가경영이 연습장일 수는 없다. 차차 배워가며 익히고 더러 시행착오를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다. 국정에 대해 '뭘 좀 아는'사람이 처음부터 책임지고 해나가야 할 일이 국가경영이다.

요컨대 무당이 필요하면 무당을 써야지, 선무당을 쓰면 안된다. 아무리 논쟁 잘하고 청렴한 사람이라도 부하의 허위보고를 간파하지 못하고 휘하 관료의 부패나 적당주의를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요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

YS 정부 초기에 사치를 배격한다고 화환을 금하고 룸살롱을 억압했다. 그러자 꽃재배 농민들이 데모를 하고 강남에 갑자기 도둑이 늘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선한 동기나 순수한 열정만으로 국가경영이 잘 되지는 않는다. 고금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관중(管仲)은 죽을 때 임금이 후임에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인 포숙(鮑叔)을 쓰겠다고 하자 "안됩니다. 그는 악을 너무 지독하게 미워하므로 적임이 아닙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쪼록 盧당선자도 개혁이든 안정이든 '쥐 잘잡는 고양이'를 많이 택하기 바란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