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신약 개발 투자의욕 살리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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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의경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진단 후 3~5년 이내에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환으로, 골수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그러나 2001년 글리벡이라는 혁신적인 신약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오늘날 백혈병은 많은 환자에게 당뇨병이나 고혈압같이 관리가 가능해진 만성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혁신적 신약은 이렇게 건강수명을 연장시키고 입원기간을 단축하는 등 국민 건강 증진에 지대한 기여를 한다.

 블록버스터급 신약 출시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전통 제조업 못지않다.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는 2010년 한 해 동안 무려 127억 달러(한화로 약 14조6000억원)라는 경이적인 매출로 단일품목 전 세계 매출액 1위에 올랐다. 우리나라 총 자동차 수출 규모의 3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건강보험 재정 중 약 30%를 차지하는 약제비는 건보 재정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부에서도 경제성 평가와 약가 협상을 통해 보험 약가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에 대해 거의 반값 수준의 과감한 약가 인하를 단행했다. 약제비 증가율은 둔화되고 약제비 비중도 감소되는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의약품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 제한, 제약기업의 수익률 하락에 따른 신약 개발 위축과 산업 경쟁력 저해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보험 약가정책이 제약산업에 미치는 파급 영향을 고려할 때 산업적 고려가 등한시되면 안 된다. 오히려 건강보험정책은 산업정책과 연계해 제약산업에 보다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제약산업에 대해 전달할 첫째 메시지는 카피약만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반값 약가정책을 통해 지난해에 실행했고, 기업은 이 정책에 따라 인력 조정 등 경영 합리화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둘째 메시지는 신약 개발에 매진하는 기업에는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내 보험 약가정책에는 둘째 메시지가 불분명하다. 정부는 신약의 가치가 충분히 보상되며 당근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기업에서는 당근은커녕 채찍으로만 느낄 뿐이다. 연구개발(R&D) 유인책으로서 역할은 거의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

 제약산업은 차세대 신성장동력으로서 미래의 주요한 먹거리 산업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2020년까지 총 50~60개의 신약 개발로 한국을 세계 7대 글로벌 제약 강국으로 육성시키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블록버스터급 대형 신약을 4개 개발할 경우 국내 제약산업은 28조원의 시장이 확대돼 17만 명의 고용을 유발하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핑크빛 미래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신약 개발에 대한 제약산업의 투자의욕을 살려야 한다. 신약의 가치와 혁신성, 접근성에 대해 보다 높은 사회적 가치를 둬야 한다.

 현재 국내 제약기업들은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거듭날지, 취약한 자본력으로 글로벌 제약회사의 도매상으로 전락할지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새 정부는 창조경제를 지향한다고 했다. 제약산업이 창조경제 구현과 국민의 건강 한 삶에 크게 기여하는 산업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해 본다.

이의경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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