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이 어제 문희상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대선 패배의 충격을 추스르며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끌 과도 관리체제가 갖춰졌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산 넘어 산이다. 무엇보다 편을 갈라 세력다툼을 하는 계파 체질이 여전하다. 당초 비대위원장엔 주류·비주류가 각자 후보를 내세워 표 대결을 할 태세였다. 자칫 국민들 앞에서 당권 싸움의 추태를 보여줄 뻔했다. 막판에 가까스로 합의추대라는 모양새를 갖춘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또 향후 당 노선에 정체성을 더 강화하자는 주장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진보 색채를 더 부각시키자는 뜻인데, 이는 대선에서 왜 졌는지 아직도 모른다는 얘기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민주당 내 특정 계파의 권력욕과 호전성이야말로 50대 유권자들을 등 돌리게 만든 요인 아니었나. 민주당은 책임 있는 공당(公黨)이지 운동단체가 아니다.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선거에 패한 뒤엔 정책노선을 재정비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표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옹색해진 권력 지형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인사청문회에서 낙마시키겠다고 벼르는 데서 잘 드러난다. 검증은 청문회 때 하면 되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거부하면 될 일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반드시 낙마’를 공언하는 건 다분히 정략적이다.
그러면서도 외유성 출장이나 연금 등 개인에게 주어지는 권력의 단맛에 취해 여당 의원들과 함께 망가지기도 한다. 도대체 여기에서 국민들이 무슨 야성(野性)과 혁신성을 느낄 수 있겠나.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범야권을 모두 긁어모았으면서도 패배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집했던 범야권, 또는 진보 세력이라는 추상적 카테고리엔 여러 하위 그룹들이 포함돼 있다. 386·486·친노 등 민주화 엘리트 집단, 안철수 지지층과 같은 중도 혁신세력, 노동계나 재야 사회단체, 특정 지역의 토착세력, 종북 좌파…. 이들 중 소수 극단주의자들을 걸러낸 뒤 국민에게 책임질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서의 결속력을 다음 선거까지 유지하는 게 민주당의 역할이다. 그러나 계파 싸움을 멈추지 않는 한, 호전적 운동권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한 민주당은 그런 구심점이 될 수 없다.
민주당은 지지율 48% 이상의 확장성을 지닌 유연한 진보적 정책정당으로 변신할지, 소수 운동권 엘리트 중심의 호전적 전투정당으로 고립될지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이는 민주당의 내부 문제만이 아니다. 민주당을 밀어줬던 진보세력 전체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문희상 비대위는 ‘진보 비대위’라는 인식을 지니고 혁신에 나서야 한다. 문 위원장은 어제 회견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라는 표현을 썼다. 민주당이 진보적 정책정당으로서 국민에게 다가가려면 그 같은 상황의 엄중함을 온몸으로 자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