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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몸 다칠세라’ 외규장각 도서 특별수송작전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 과정을 기록한 『영조 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의 한 장면. [문화재청 제공]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BNF)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297권 중 1차분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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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트레일 코스] 천마산~백봉산 능선 오르내려 … 가파른 산길 … 등산장비 챙겨야
사릉길은 가파르기 때문에 장비를 갖춰 걷는 것이 안전하다. 다산길의 마지막 코스는 사릉길이다.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의 묘인 사릉(思陵)에서 길이 시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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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돌려받을 계획 없다” 약속 … 사실상 영구 반환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 과정을 기록한 ‘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 중 한 장면. 외규장각 도서 중 프랑스에만 남아 있는 유일본이다. [문화재청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12일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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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론자 대원군, 쇄국론자 최익현의 공격에 무너지다
정족산성 동문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다. 병인양요 때 양헌수가 이끄는 결사대가 프랑스 군대를 물리친 곳이다. 사진가 권태균 개국군주 망국군주 고종③ 천주교 탄압고종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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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묻은 다음 날, 노론은 역사를 되돌리기 시작했다
다산 초당 정약용이 18년간 유배 생활을 한 전남 강진의 만덕산 기슭에 있다. 정약용의 일가는 정조 사후에 사형당하거나 유배를 당해 폐족 신세가 된다. 사진가 권태균 최근 정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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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죽음 예고하듯, 상복 입은 ‘하얀 벼’ 기현상
정조 건릉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데 정조와 부인 효의왕후 김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사도세자 묘소인 융건릉 곁에 있다. 노론 벽파는 시신을 땅에 묻자마자 정조가 키워온 남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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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동생 제거하라”오빠 잃은 정순왕후 정조에 복수 칼 겨눠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아무리 거창한 명분으로 포장돼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정치공세는 사익(私益)이나 당익(黨益)을 실현하기 위한 소모적 정쟁에 불과하다. 이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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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동생 제거하라”오빠 잃은 정순왕후 정조에 복수 칼 겨눠
장용영( 壯勇營) 내부 평면도. 정조 23년(1799) 제작됐다. 정조는 이율·홍복영 역모 사건에 구명겸이 연루된 의혹이 드러나자 새 호위부대인 장용위(壯勇衛)를 만들고 장용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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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정에 남인 채제공 발탁, 권력 재편 승부수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 앞 시사단(試士壇). 정조가 영남 남인들을 위해 도산서원에서 지방 별시를 실시한 것을 기념하려고 세운 비각이다. 사진가 권태균 성공한 국왕들 정조③ 남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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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이 보낸 자객, 왕의 침실 지붕 뚫고 암살 시도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정치를 주도할 경우 정쟁은 극단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 경우 상대방이 집권했다는 현실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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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이 보낸 자객, 왕의 침실 지붕 뚫고 암살 시도
정조는 즉위 후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시는 경모당을 짓고 옥으로 만든 도장을 바쳤다. 노론에서는 정조를 압박하기 위해 이복동생들을 역모죄로 몰아 죽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헐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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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복 악순환 끊고 새 시대 통합을 꾀하다
사도세자 사당 전남 무안군 남동리에 있는 사당이다. 마을 사람들의 꿈에 사도세자가 나타나 세웠다고 하는데 민간에서 세운 유일한 사당이다. 성공한 국왕들 정조① 사도세자의 아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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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새를 세손에게…” 새 군주의 시대 열리다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영조 어진(御眞) 영조는 어진 임금을 표방했으나 소론 강경파는 물론 아들의 피까지 손에 묻혀야 했던 비극의 임금이었다. 사진가 권태균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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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새를 세손에게…” 새 군주의 시대 열리다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도자가 후세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좋은 후계자의 선택이다. 영조는 탕평책을 붕괴시키고 사도세자를 죽임으로써 노론 일당독재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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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새를 세손에게…” 새 군주의 시대 열리다
1.원릉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2. 정순왕후 생가 효종이 김홍욱에게 내려준 집인데, 김홍욱은 소현세자 부인의 신원을 주장하다 사형당했다(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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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계비가 왕실 ‘불행의 씨앗’ 될 줄이야
왕조국가나 대통령제 국가의 큰 문제는 외척이나 측근의 발호 가능성이었다. 영조는 말로는 외척의 전횡을 비판했으나 행동으로는 이들을 정국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또 말로는 탕평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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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계비가 왕실 ‘불행의 씨앗’ 될 줄이야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 66세의 영조가 왕비로 맞아들인 15세의 정순왕후는 조선 후기 정국에 큰 파란을 몰고왔다. 사진가 권태균왕조국가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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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계비가 왕실 ‘불행의 씨앗’ 될 줄이야
홍봉한 초상 사도세자 제거에 앞장섰던 혜경궁의 부친 홍봉한은 세자 사후에 동정론으로 돌아서서 노론 벽파의 비판을 받았다. 절반의 성공 영조⑨ 두 외척의 대립소론의 정견을 갖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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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청정 덫에 걸린 세자의 뜨거운 가슴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세자 대리청정은 제왕수업이란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지만 2인자로서는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사도세자는 즉위 때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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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청정 덫에 걸린 세자의 뜨거운 가슴
사도세자 영정 사도세자는 반(反) 노론의 정견을 표출하다가 영조와 노론의 합작에 의해 살해되었다. 우승우(한국화가) 절반의 성공 영조⑧ 사도세자(下)영조는 재위 25년(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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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왕위이양 ‘쇼’ , 4살 세자는 석고대죄했다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함춘원지의 함춘문 정조는 즉위 후 사도세자 사당을 창경궁 동쪽 후원 함춘원으로 이전하고 경모궁으로 개명했다. 일제는 1924년 이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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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왕위이양 ‘쇼’ , 4살 세자는 석고대죄했다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세자는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당선자다. 다만 현재의 임금이 사망해야 즉위하기 때문에 즉위 날짜를 모른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당선자와 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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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왕위이양 ‘쇼’ , 4살 세자는 석고대죄했다
함춘원지의 함춘문 정조는 즉위 후 사도세자 사당을 창경궁 동쪽 후원 함춘원으로 이전하고 경모궁으로 개명했다. 일제는 1924년 이 자리에 경성제대 의학부를 건설하면서 그 원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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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묻힌 금괴 소문 단서로 고종·대한제국 독립정신 재평가”
‘독도는 우리 땅’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을 작사·작곡한 박문영(57·예명 박인호·사진)씨가 문영이란 필명으로 역사소설 『제국의 부활-황제』(전3권, 평민사)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