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869)|골동품비화 40년(10)-제주도서 온 청자

    도굴하면 청일 전쟁이후 한일합방 당시까지 일인들이 개성 언저리의 청자를 마구 쑤셔간 때를 전성기로 봄직하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나라 사람이 골동에 눈을 뜨기도 전이어서 부지부식간에

    중앙일보

    1973.10.10 00:00

  • (865)| 골동품 비화 40년 (6)|박병래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계속 오름세를 보여 줄곧 값이 뛰기만 하던 골동품은 20여년 후인 194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비싼 것이 1만원 선을 육박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았다.

    중앙일보

    1973.10.05 00:00

  • 21년만에 한국 찾은 초대 주한미 대사 「존·J·무초」옹|"여학생들 걸음걸이에 생기 넘쳐"

    『김포공항에서 조선 「호텔」까지 오는데 알아볼 수 있는 건물이나 다리가 하나도 없었읍니다. 참으로 엄청나게 변했군요. 변한걸 찾기보다는 안 변한걸 찾는게 더욱 힘들게 되었구료….』

    중앙일보

    1973.10.04 00:00

  • (864)|골동품비화 40년(5)|박병래

    이등박문과는 또 달리 하류 급 무뢰한의 횡포는 참으로 가관이어서 중일전쟁을 기화로 일확천금을 거두려는 무식한 협잡배가 도처에서 행 락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 광산에

    중앙일보

    1973.10.04 00:00

  • 범국민 저축 증대 운동 전개|박 대통령 새해 시정 연설

    박정희 대통령은 4일 국회에서 74년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새해 시정 연설 (김종필 총리 대독)을 했다. 박 대통령은 약 1만5천자에 달하는 장문의 연설을 통해 ▲외교 ▲국방 ▲

    중앙일보

    1973.10.04 00:00

  • (863)|골동품비화 40년(4)-박병래

    한 30여 년 전만 해도 웬만한 시골집 뒤 주위에는 으레 파란 물감으로 목단을 그리고 완자무늬를 두른 백자항아리가 보통 하나 씩은 있었다. 어떤 연유로 뒤주 위에 덩그러니 앉게

    중앙일보

    1973.10.03 00:00

  • (489)-미결의 종장(4)

    1954년 6월15일, 이날 「제네바」회의는 6·25 전쟁과 관련된 한국 문제를 정치적으로 타결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공식으로 선언하였다. 이는 곧 국토 분단선의 이름이 38선에서

    중앙일보

    1973.07.27 00:00

  • (475)|휴전회담(후반부)(27)|협정조인

    1953년7월27일 상오10시와 하오1시에 쌍방간에 휴전협정조인이 끝나자 관계당사국들은 재빨리 아전인수격의 성명을 발표했다. 휴전에 즈음하여 나타난 이 반응은 세 갈래로 대별됐는데

    중앙일보

    1973.06.25 00:00

  • EC투자조사단 방한요청

    【브뤼셀=조남조 특파원】김종필 국무총리는 22일 「벨기에」의 「르뷔르통」수상이 한국을 공식 방문토록 초청했다. 이에 대해 「르뷔르통」수상은 『적당한 시기를 보아 한국을 방문하겠다』

    중앙일보

    1973.05.23 00:00

  • (상)가영의 『신 일본사』수정 계기 일본문부성 「검정」의 문젯점

    금년 봄 일본의 고등학교용 일본사 교과서에서 한·일 관계의 사실을 전례없이 개정, 가필하고 있는 점은 최근의 고대 한·일 관계사 연구 여의 고조와 더불어 일본학계의 동향을 반영하는

    중앙일보

    1973.04.02 00:00

  • (439)전시의 문화인들(4)

    문인들의 종군 활동은 6·25직후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들이 정식으로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인 활동을 벌인 것인 마해송씨(고)를 중심으로 한 「공군 문인단」이 제일 먼저였다. 51년3월

    중앙일보

    1973.03.30 00:00

  • (428)지원작전⑭|병기(2)

    총은 군인의 제2 생명이며 전장의 소중한 「애인」이다. 그러기에 육군병기학교장 장희준 소령은 6월말 수원비행장에 공수돼온 탄약의 운반집적을 진두 지휘하면서 마지막 한정의 기관총을

    중앙일보

    1973.02.23 00:00

  • (419)지원작전(5)|군수보급(5)

    「작전」과「보급」은 바늘에 실이 따르듯이 전투수행에 있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선 보병부대 작전을 바로 뒤에서 지원해 줘야하는 사단이나 군단의 군수보급 장교들은 부대가 일시에

    중앙일보

    1973.01.31 00:00

  • (415)군수보급(1)|지원작전(1)

    화력·기동력·통신은 현대 국지전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3대요소라고 볼 수 있겠다. 병기·탄약 등의 화력과 수송·유류·정비 등의 기동력, 유무선의 통신은 모두가 군수보급기능에 속하는

    중앙일보

    1973.01.18 00:00

  • (13)-계획경제(상)

    북한경제는 해방 이후 오늘까지 4개 경제개발계획단계를 거쳐 왔다. 제1단계는 해방 후 1950년까지 식민지적, 반봉건적,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제거하여 사회주의경제체제로 정비하였던

    중앙일보

    1972.12.11 00:00

  • 한국 고대사 무엇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해석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당면한 민족적 과업이다. 이 과업의 추진을 위해 중앙일보사를 비롯한 4개 신문사는 공동으로 한국사 연구사업을 벌인다. 학계와 언론계가

    중앙일보

    1972.10.02 00:00

  • 일·중공 수교…세계의 반향

    아·태 지역서 역할 축소 우려|동남아 우방들, 중공과 정상화 적극 추진 전망|【워싱턴=김영희 특파원】 일·중공 공동 성명을 접한 미국 관리, 전문가들은 ①일·중공 관계 수립이 전후

    중앙일보

    1972.09.30 00:00

  • 북경의 표적

    서동빈씨 서동빈 씨는 27년 북경에서 출생, 곤 명에 있는 동서 남 연합 대학을 졸업하고 종전 후 북경대학에서 서양문학을 전공했다. 55년 공산권문제 연구기관인 우련 연구소의 연구

    중앙일보

    1972.09.22 00:00

  • (370)|「스탈린」의 죽음(4)|소련과 6·25(1)

    「스탈린」이 죽기 전에 한반도 전체에 공산위성 정권을 세우려고 마음먹은 것은 대일 참전 때부터였다. 하긴 소련이 한반도의 부동항에 군침을 삼킨 것은 이미 제정 노서아 때부터이긴 했

    중앙일보

    1972.09.11 00:00

  • (341)유격전(10)

    단군설하구전의 바탕이 되고 있는 구월산에 접한 황해도의 은율·안악·신천·재령·장련·송화군 일대는 6·25전부터 북괴가 말하는 소위 최악의 「반경」지역으로 그들로부터 혹심한 탄압을

    중앙일보

    1972.06.23 00:00

  • 임란 때의 귀중한 두 문헌 발견|「간과일기」·「괴원 등록」을 대구와 서울서

    임진왜란 당시의 사정을 기록한 두가지문서가 대구와 서울에서 각각 발견되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 사실이 밝혀졌다. 대구의 헌 책방에서 발견된 사료는 의병의 활약을 기록한 종군

    중앙일보

    1972.04.27 00:00

  • 민속은 근대화를 저해하는가|장주근

    찬란한 신라금관의 조형이 시베리아 샤만의 관이라는 것은 고고학 계의 상식이며 2대 남해 왕이 무였다는 것도 주지된 사실이다. 수 양제의 백만 대군을 격퇴하고 망국케 했던 고구려의

    중앙일보

    1972.04.01 00:00

  • (308)-휴전회담의 개막(22)「6·25」21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3년

    휴전회담은 1952년 2월 6일부터는 제5항의 관계국정부에 대한 건의사항토의를 개시함으로써 미해결의 의제 제3, 4, 5항을 모두 각 분과 위원회에서 동시에 다루게 되었다. 이렇게

    중앙일보

    1972.03.29 00:00

  • (297)휴전회담의 개막(11)

    (1) 「유엔」군 측 대표의 일원인 「아레이·버그」 제독이 근착 「리더즈·다이제스트」지에서 회고한바와 같이 미국은 늦어도 한 달이면 휴전회담은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중앙일보

    1972.03.0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