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이 군란 겪던 임오년, 이토는 유럽서 헌법을 배웠다
조·일 통상조약 체결 기념연회도. 1883년 7월 조선의 민영목과 일본의 다케조에 사이에 맺어진 조약 체결을 축하하는 그림이다. 이 조약에서도 조선의 관세주권은 회복되지 못했다.
-
[백가쟁명:유주열] 모리화(茉莉花)의 유전(流轉)
모리화(茉莉花)의 유전(流轉) 중국인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모리화차(茶)와 노래이다. 모리화차는 중국인이 매일 마시는 화차(花茶)의 일종이다. 일반 차에는 없는 독특한
-
전제왕권 집착한 고종, 나라를 열강의 먹이로 내놓다
청일전쟁의 참화 청일전쟁이 벌어진 평양 선교리의 모습이다. 고종이 청국군의 파병을 요청한 뒤 이 땅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졌다. 사진가 권태균 개국군주 망국군주고종⑧ 외세 의존의 한
-
지아비 걱정에 아파하던 여인, 편지 속 명성황후
명성황후 친필 편지. 연꽃 위로 나비가 나는 문양의 시전지에 짧게 적은 편지다. 안부 외에 ‘충경이를 궁에 데려다 보니 좀 더 커서 든든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립고궁박물관
-
공론화 없이 추진한 개화, 척사파 설득 못해 실패
개국군주 망국군주 고종⑤ 임오군란 고종은 강화도조약 체결 20일 후인 재위 13년(1876) 2월 수신사(修信使) 김기수(金綺秀)를 일본에 파견했다. 김기수는 견문록 일동기유(日東
-
공론화 없이 추진한 개화, 척사파 설득 못해 실패
수신사 김홍집의 행차 온건개화파 김홍집은 1880년 일본에 다녀오면서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가지고 와 척사파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 사진가 권태균 개국군주 망국군주 고종⑤ 임오
-
유적·유물로 본 내고장역사 ⑥ 아산·성환이 겪은 청일전쟁
일본군이 청군을 물리친 기념으로 세웠다고 전해지는 아산 영인면 강청리의 ‘진청암(鎭淸岩)’. [조한필 기자]“아산이 깨지나, 평택이 무너지나.” 이 말은 1894년 한반도에서 벌어
-
마오쩌둥, 90세 ‘홍콩노인’ 저우서우천에게 손을 내밀다
1953년 홍콩을 방문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일리노를 영접하는 홍콩의 중국인 영수(香港大老) 저우서우천. 당시 92세였다. 김명호 제공 1949년 5월 중순, 중국인들이 ‘
-
[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고개 들어 먼 곳을 보라
거문도에 다녀왔습니다. 일하는 출장이었지만 덤으로 얹힌 다도해 풍광 덕분에 눈이 시원해졌습니다. 하지만 더욱 좋았던 건 또 하나의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었지요.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상하이 엑스포 중국관은 ‘애국노인’ 마상보
▶1929년 겨울 정·관계와 학계 인사들이 뤼야탕(綠野堂)에 칩거 중인 마상보(앞줄 왼쪽 둘째)를 방문했다. 마상보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건 원로 대접을 받았지만 권력을 행사한 적
-
상하이 엑스포 중국관은 ‘애국노인’ 마상보 칩거 장소
1929년 겨울 정·관계와 학계 인사들이 뤼야탕(綠野堂)에 칩거 중인 마상보(앞줄 왼쪽 둘째)를 방문했다. 마상보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건 원로 대접을 받았지만 권력을 행사한 적은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65) 장위안치
▲장위안치는 쑹칭링과 함께 중공의 통전 대상 1호였다. 신정권 선포 직전 상하이 시장 천이(오른쪽 끝)의 안내로 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장위안치(앞줄 왼쪽
-
장위안치, 황제에게 개혁의식 불어넣은 ‘출판의 황제’
장위안치는 쑹칭링과 함께 중공의 통전 대상 1호였다. 신정권 선포 직전 상하이 시장 천이(오른쪽 끝)의 안내로 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장위안치(앞줄 왼쪽 셋
-
[그때 오늘] 서구 열강에 시달리면서도 조선 지배 야욕 못 버린 이홍장
1896년 영국 방문 중 솔즈베리 총리(왼쪽)와 함께한 73세의 이홍장(李鴻章·1823~1901). 그는 청일전쟁 패배 이후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권력자가 아닌, 평화를 호소하는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64) 리스쩡
▲1930년대 초 상하이에서 세계문화합작회의를 준비하던 리스쩡(왼쪽 첫째)과 장징장(오른쪽 셋째), 차이위안페이(가운데), 우즈후이(왼쪽 셋째).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국민당의
-
프랑스서 두부사업 성공한 리스쩡, 중국 혁명의 자금줄
1930년대 초 상하이에서 세계문화합작회의를 준비하던 리스쩡(왼쪽 첫째)과 장징장(오른쪽 셋째), 차이위안페이(가운데), 우즈후이(왼쪽 셋째).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국민당의 4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63) 루스어
▲1904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를 위해 서태후(西太后)는 황족 가운데 가장 민주적이던 푸룬(溥倫·앞줄 가운데 안경 쓴 사람)을 대표로 파견했다. 중국관 앞에서
-
소설가 루스어, 100년 전 상하이 엑스포 예언
1904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를 위해 서태후(西太后)는 황족 가운데 가장 민주적이던 푸룬(溥倫·앞줄 가운데 안경 쓴 사람)을 대표로 파견했다. 중국관 앞에서 서
-
[백가쟁명:유주열] 동아시아의 지중해
3월26일 밤 1200톤의 초계함 천안호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외부충격으로 침몰한 곳이 백령도 근해이다. 백령도는 1953년 이래 유엔군의 북방한계선(NLL)에 의해 한국의 실효지
-
[그때 오늘]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 김옥균을 암살하다
18 92년 기메박물관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던 홍종우(洪鍾宇, 1850~1913). 파리 체재 시에도 한복을 입고 고종의 초상화를 품에 지닐 만큼 군주에 충성을 다한 원초적 민족
-
[백가쟁명:유주열] 위안스카이와 望月寺
서울 근교 도봉산에는 망월사라는 고찰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한 절이다. 망월사는 그 현판이 중국의 청말 민국초의 풍운의 인물 위안스카이(袁世凱)에 의해 써여졌다는 것으로 유
-
[그때 오늘] 개화파와 사사건건 충돌했던 묄렌도르프
조복을 입고 관대를 두른 조선 최초 푸른 눈의 고문관 묄렌도르프(P. G. von Mllendorff, 穆麟德, 1848~1901). 그가 조선옷을 입은 까닭은 백성들이 그를 유럽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이홍장
▲1900년 겨울 베이징을 점령한 서구 열강과 담판하기 위해 회담장에 도착한 이홍장. 김명호 제공 기독교는 중국인의 종교가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가장 중요시했
-
‘굴욕 조약’에 피 토한 이홍장
관련기사 77세 노구의 이홍장, 서태후의 목숨을 구하다 1900년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공격할 때 서태후를 구한 인물은 77세의 이홍장이었다. 그는 대외 조약 중 가장 치욕적